수빈의 안정을 위해 두 사람은 제주도에 내려간다. 그러나 안온한 일상을 견디기 어려워하던 수빈은 임신에 집착하고, 광기는 더 심해진다.
CF촬영감독과 사진작가로 일해온 박성일 감독의 데뷔작인 ‘그녀에게 잠들다’는 프랑스 영화 ‘베티 블루’의 해적판 같은 영화다. 수빈과 재모의 캐릭터 설정을 비롯해 페인트 칠 장면 등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너무 노골적으로 ‘베티 블루’를 본땄다.
널리 알려진 영화를 거의 그대로 옮긴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맹점은 그나마 ‘베티 블루’의 핵심이라 할 여주인공의 광기어린 연기를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
수빈의 거친 행동에는 ‘베티 블루’에서 베아트리체 달이 보여준 것과 같은 광기가 배어있지 않다. ‘상처받은 수빈…’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줄곧 나오는데, 정작 스크린 속 수빈은 맹숭맹숭하다 갑자기 떼를 쓰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화면은 대칭이 잘 잡혀있고 시종일관 따스한 파스텔 색상을 띠지만, 불안에 떠는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기엔 잘 맞지 않는다.
이야기와 연기에 흠집이 많으니, 보는 이의 시각적 쾌감을 위해 잦은 정사장면이라도 에로틱해야 할텐데 그것조차 미흡하다. 17일 개봉. 18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