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KBS1<역사스페셜>,"활빈당은 실존했다"

  • 입력 2001년 3월 15일 18시 31분


<역사스페셜>(KBS1·토요일 저녁8시)은 이번 주 ‘활빈당’을 찾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악덕 관리를 혼내주고 부호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는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속의 ‘활빈당’. 소설 속의 활빈당은 300여년 뒤인 19세기 구한말 ‘현실’로 부활했다.

스스로를 ‘홍길동의 후예’라 주장하는 이들은 조직 이름을 ‘활빈당’이라고 짓고 1894년 동학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활빈당의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 중 하나는 ‘활빈당발령’.

<홍길동전>을 꾸준히 연구해 온 김일근교수(건국대)가 발견한 이 문서는 구한말 활빈당이 충청도 부호 정인원에게 “돈 5000냥을 가져오라”고 요구한 일종의 협박장. 이들이 소설속의 활빈당처럼 부호들에게 돈을 뜯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인 셈.

이 문서에서는 “길동선생 이후로 이칠성 그후로 난 맹감역이라…”는 표현이 나와 소설의 주인공 ‘홍길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구한말 활빈당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두머리의 이름을 모두 맹감역, 혹은 마중군이라고 불렀다. 이는 전국 각지에서 같은 시간에 맹감역과 마중군이 나타나 활약하는 것으로 비쳐져 소설에서 ‘홍길동’이 8개의 분신을 전국 각지에 보내는 것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활빈당의 조직원이 1만명에 달했다고 기록하고 있을 만큼 활빈당은 상당한 ‘조직력’을 갖췄던 것으로 보인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활빈당은 전국적인 모임을 1년에 한번씩 가졌다.

1899년에는 경기도에서 전국 모임을 가진 뒤 인근 신승지가(家)를 습격하여 1만8000냥을 탈취해 빈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비록 도적의 신분으로 남의 재산을 빼앗는 행동을 일삼긴 했지만 빈민에게 나눠준 탓인지 당대 민중들의 평가는 후했던 편. 구한말 개화파인물인 김윤식은 일기인 ‘속음청사’에서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고 곡식을 나눠주는 활빈당을 위해 백성들이 세워준 나무비석이 숲과 같다”고 기록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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