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80년대 학창시절 추억이 가득 배인 영화속 풍경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억센 부산 사투리에 실린 사실감 가득한 유오성 장동건 등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곽경택 감독의 절절한 인생 체험이 바탕이 된 이 영화의 인물이나 사건은 대부분 실제 이야기다. 영화속 상택은 감독 자신이고 유오성이 맡은 건달 준석 역시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는 실존 인물.
공교롭게도 1966년 말띠 동갑나기로 영화 ‘친구’를 통해 만나 진짜 친구가 된 곽경택 감독과 유오성을 만나 영화와 우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작]
곽 감독은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의대 본과 1학년까지 다니다 영화를 하겠다며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돌아와서 만든 작품이 ‘억수탕’과 ‘닥터K’.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그나마 목욕탕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억수탕’은 비평에선 좋은 점수를 얻었지만 자신의 의대 재학 경험을 녹여 만든 ‘닥터K’는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패했다.
“세계시장에서 어떤 영화가 먹힐까 하는 고민끝에 가슴보다는 머리로 만든 작품이었죠. 자꾸 이야기를 기획 아이템으로 접근하려고만 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진짜 정서적 울림이 있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마음 한 켠에 늘 미안함을 간직하고 있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감옥에 있는 친구에게 시나리오 초고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니가 성공할 수 있다면야 내 얘기를 얼마든지 이용해 먹어도 나는 좋다.”
[만남]
영화는 기획단계에서 3번이나 장애물을 만났다. 투자사가 부도가 나거나 배우 캐스팅이 난항을 겪으면서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유오성은 지난해 3월 시나리오를 받아 보고 몸이 달아올랐다. 너무 맘에 들었지만 출연 중인 TV 드라마 스케쥴상 영화 출연이 어려웠기 때문. 곽 감독으로부터 “개봉이 늦어지더라도 기다리겠다”는 답변이 왔다.
하지만 동수역 캐스팅이 난관에 부딪혀 다시 촬영이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대학로에서 곽 감독을 만난 유오성은 말했다. “2년이고 3년이고 기다린다. 걱정하지 말라.”
그날 술로 밤을 지샌 두 사람은 영화속 친구(親舊)의 한자 뜻풀이 그대로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귀는 벗’이 됐다. 유오성은 곽 감독과 함께 영화의 실제 주인공 준석을 교도소로 찾아가 면회했다.
“바위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번 좋다고 생각하면 누가 뭐래도 끝까지 좋아하는 사람.”
영화 제작이 끝날 무렵, 곽 감독은 감옥에서 온 편지를 받았다.
“…영화 홍보가 장동건에게 초점을 맞춰 오성이가 가려지는 것 같아 걱정이네.”
[남자멜로]
곽 감독은 영화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라카’를 닮았다는 말에 오히려 ‘대부’에 가깝게 찍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원스∼’에는 웬지 멜로 냄새가 나지만 ‘친구’에선 철저히 멜로를 배격했다며. 그러자 유오성이 바로 맞받아쳤다. “왜 그래. 이거 멜로 맞잖아. 남자 멜로.”
곽 감독이 속으로 진짜 걱정한 것은 드라마 ‘모래시계’였다. 자칫 폭력세계를 미화했다는 말을 들을까 조심했고 2시간 분량에 정치적 사회적 색깔을 탈색시켜버린 것은 내심 ‘모래시계’의 아류로 비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성인영화]
유오성은 ‘친구’가 진짜 성인영화라고 말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이 자신의 추억을 꺼내고 스스로를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만드는 영화라면서.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문화활동에서 소외됐던 30, 40대 남자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우정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곽 감독의 말처럼 ‘강약을 조절하는 눈빛 연기로 최고의 연기를 펼친’ 유오성에겐 오래 기억될 작품이기도 하다.
“그 전의 제 연기가 배우를 지향하는 연기였다면 이 영화에서부터는 비로소 배우로서 연기를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유오성)
곽 감독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그의 부산고 동문들이 4월초 서울의 한 극장에서 ‘친구’ 시사와 함께 재경동문회를 열어 곽 감독의 성공을 빌어주기로 한 것이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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