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육영수여사가 총탄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영부인이 되면 빨리 죽겠구나’하는 생각에 꿈을 바꿨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고 ‘영부인’도 될 수 있는 배우로.
안양예고 1학년때인 1978년 영화진흥공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뽑은 남녀 주연배우 공모에 응모해 강석우씨와 나란히 뽑혔다. 심사위원이었던 김수용 감독님이 나를 눈여겨보시고는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너 조금만 빨리 커라”고 재촉하셨다.
그러다 고3이 되니까 김감독님은 “이제 됐다”면서 <물보라>라는 영화의 주연으로 데뷔시켜 주셨다. 금보라라는 예명(본명 손미자)도 이 때 김 감독님이 골라주셨다.
이 영화는 어부의 어린 아내가 질투에 사로잡힌 남편의 의심을 견디자 못해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내용으로 극작가 오태석씨의 작품이었다. 상대역은 패션 디자이너가 된 하용수씨였다.
첫 연기였는데다 충무 앞바다의 욕지도라는 섬에서 보름동안을 보내며 영화를 찍느라 고역을 치렀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은 있어 그해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땐 참 내 미모를 따라올 여배우가 없었던 것 같다.
TV드라마는 81년 KBS 일일사극 <천생연분>이 데뷔작이다. 조선시대 천방지축인 공주가 양반가로 시집온 뒤 소동을 그린 드라마였는데 연기가 뭔지도 모르는 철부지 같던 나와 잘 맞아 떨어져 큰 인기를 얻었다. 이어 최고 인기드라마였던 <보통사람들>에 캐스팅돼 강석우씨를 다시 만났다.
지금 <태조 왕건>에서 견훤의 왕비역을 맡았으니 어릴 적 꿈은 이룬 셈인가. 하지만 이제 겨우 연기란 것에 눈을 떴는데 아직 진짜 사람 냄새 나는 배역을 못만난 것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