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작에 평생 한편의 작품도 못올리는 감독들이 대부분이지만 소더버그는 올해 ‘트래픽’과 ‘에린 브로코비치’ 두작품을 한꺼번에 후보에 올려놓은데 이어 본상까지 받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1929년 3편의 후보작을 낸 프랭크 로이드 감독이 ‘성스러운 여인’으로 본상을 수상한 이래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두 편 이상 후보를 낸 감독은 1938년 마이클 커티즈 감독과 1930년 클래런스 브라운 감독이 있었으나 본상 수상엔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당초 ‘트래픽’과 ‘에린 브로코비치’ 두편으로 아카데미 회원들의 표가 나뉘어 감독상은 ‘글래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이나 ‘와호장룡’의 리안(李安)에게 돌아갈 것으로 점쳤다. 소더버그는 실제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할 골든글로브에서도 두 작품으로 표가 갈려 리안감독에게 감독상을 양보해야했다.
소더버그는 감독상 수상이 확정되자 “예술이 없었다면 세상은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며 “지금 이 순간도 책이건 그림이건 춤이건 음악이건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감독 자신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은 ‘트래픽’은 마약으로 멍들어가는 미국의 현실을 다큐멘터리와 같은 기법으로 촬영한 작품. 그는 이 영화에서 마약퇴치가 마약밀매조직과의 ‘전쟁’을 통해 쾌도난마식으로 이뤄질 수 없으며 고통스런 일상 생활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1989년 영화 데뷔작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한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1998년 ‘조지 클루니의 표적’ 이후 독립영화의 틀에 인기스타를 출연시키는 방식으로 대중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은 ‘에린 브로코비치’와 ‘트래픽’으로 이어졌고 결국 거장의 자리에 올랐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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