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베로니카의 사랑의 전설>

  • 입력 2001년 4월 5일 18시 35분


16세기 베니스. 고급 창녀인 베로니카(캐서린 맥코맥)는 당대 최고 권력층의 남성들을 사로잡고, 신분 차이 때문에 헤어진 연인 마르코(루퍼스 스웰)와도 재회한다. 베로니카는 터키가 베니스를 침공하자 프랑스 왕과 하룻밤을 잔 뒤 원조 약속을 받아내 영웅이 되지만, 베니스에 페스트가 창궐하자 이번에는 마녀로 지탄받는다.

‘베로니카 사랑의 전설(Dangerous Beauty)’은 실제 고급 창녀에다 시인이었던 실존인물 베로니카 프랑코의 삶을 그린 영화.

이 영화에서 베로니카가 고급 창녀가 된 것은, 신분이 정해주는 운명에 따라 살기를 거부한 여성의 진보적 선택인 것처럼 묘사된다.

박식하고 정치에도 개입하는 베로니카에게, 귀부인이 된 한 친구는 “내 딸이 자라면 너처럼 만들어줘”하고 말할 정도. 그러나 후반부에서 베로니카가 마녀사냥에 휘말리는 장면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는 운명의 덫을 빠져나갈 수 없었던 한 여성의 비극을 보여준다.

당시 베니스의 풍경을 충실히 재현한 세트와 화려한 의상 덕택에 회화적 이미지가 가득하다. 그러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를 묘사하는 데에 집중하느라 영화 전체는 밋밋한 편.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의 아내 역으로 출연했던 캐서린 맥코맥은 베로니카 역을 성실히 연기했지만 스크린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부족하다. 창녀가 되기 이전인 초반부와 산전수전 다 겪은 고급 창녀가 된 후반부의 이미지에 별 차이가 없는 것도 이 영화를 감정적 높낮이가 없는 평면적 서술로만 보이게 한다.

종교재판 법정에서 베로니카의 일장연설 이후 그와 잤던 남자들이 전부 그를 옹호하고 나서는 장면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마샬 헤르코비츠 감독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메시지를 말하지 않으면 관객이 헷갈릴 거라고 생각한 걸까? 14일 개봉. 18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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