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동창중 제일 가깝게 지내는 친구도 현직 기자다. 사실 나도 대학 졸업 무렵, 기자 시험을 볼까 말까 꽤 고민했던 적도 있다. 자, 이쯤 되면 내가 기자라는 사람들을 좀 안다고 떠들어도 용서가 되지 않을까?
영화를 완성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기자들을 위한 시사회다. 시사회가 끝나면 기자들과 그 영화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기사거리를 찾아가는 거고, 난 내 영화를 그들을 통해 파는 거다. ‘눈물’을 만들고 난뒤 난 정말 많은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아마 알려진 배우도 없이 적은 예산으로 고군분투한 점이 기자들의 동정표를 사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계속 다른 기자들을 만나면서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지껄여야 하는 건 나로선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부담을 덜기위해 치러지는 것이 공동 기자회견일 것이다. 근데 그 기자회견이라는 것도 참 얄궂다.
베를린 영화제에 갔을 때 나도 기자회견이라는 걸 해본 적이 있다. 기자회견에서 앞서 대기실에서 샴페인 한 잔을 마시며 기다리는 동안, 사회를 맡은 친구가 오더니 씩 웃으면서 기자들이 많이 오지 않아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말을 건넨다. 어차피 TV 카메라는 무대 위만 고정해서 찍을 거라나.
잠시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대 뒤로 내려간다. 샴페인 잔을 쥐고 있는 나에게 그 사회자 친구는 또 씩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질문을 거의 다 자기 혼자서 해도 놀라지 말라고. 기자회견장 무대로 나가보니 아래쪽에는 서울에서 온 기자 몇 명과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이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영화제 스탭으로 보였다.
사실 그 기자들도 취재차 왔다기보다 회견이 끝난뒤 나랑 술마시러 온 거였고 김동호위원장은 순전히 내 기념사진을 찍어주러 온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30분간 계속된 기자회견에서 사회자가 혼자 계속 던진 질문은 꽤 성실하고 진지했고 나도 거침없이 떠들어댔다.
회견을 마치고 다시 대기실로 올라왔을 때 유고 출신의 세계적 감독 에빌 쿠스투리차가 앉아 있었다. 아마 다음이 그의 기자회견이었던 모양이다. 그 때까지 내 통역을 맡아주었던 점잖고 차가운 인상의 여자분이 그를 보더니 갑자기 흥분했다. 싸인을 받고 싶다는 거였다. 물론 사회를 맡은 친구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쿠스투리차에게 “기자들이 얼마 없어도…” “질문을 나 혼자 해도…”같은 말을 했을리도 만무하다.
대기실을 나가는 길에 기자회견장을 힐끗 쳐다보았더니 그 썰렁했던 기자회견장이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었다. 단 2O분사이에! 뭐 그래서 어쨌다는 건 아니다. 그냥 그랬다는 거다. <영화감독>
namu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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