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아름다운 날들>이 23% 안팎의 평범한 시청률을 보인 것도 의외지만 <호텔리어>가 그보다 낮은 시청률에 머무는 것도 예상 밖의 상황이다.
외형만 놓고 본다면 <호텔리어>는 호화 캐스팅, 미국 라스베가스 현지 촬영이라는 다양한 눈요기 거리, 호텔을 무대로 벌이는 기업가들의 암투, 호텔 직원간의 사랑 등 '평균 시청률 30%대'의 히트 드라마가 될 만한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방송된 것을 살펴보면 앞으로 드라마에서 풀어야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한동안 드라마 속 공간으로 인기가 높았던 방송사와 마찬가지로 호텔은 누구나 쉽게 그 세계를 접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특히 극중 무대가 되는 특급 호텔은 어지간한 사람이 하루 묵기도 부담스러운 곳이다.
그런 은밀하고 신비한 느낌이 있는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배용준 김승우 송윤아 송혜교 같은 인기 절정의 스타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호텔리어>의 최대 강점이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고 화려한 배역진과 호텔이란 흥미만점의 공간이 드라마 속에서 제대로 맺어지지 않는다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호텔리어>에 나오는 주인공 4인방 중 현재 극중에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풀어가는 사람은 김승우 정도이다. 미니 시리즈 경험이 많은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한태준이란 인물을 자연스런 연기로 적절히 소화하고 있다.
그의 연기는 과장되지도, 무리하지도 않다. 대사에 괜히 힘을 주지도 않는다. 편하게 고른 호흡으로 대사와 연기를 하는 그의 연기는 최근 개인적으로 겪었던 불행이 오히려 연기자로서는 한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서진영 역을 맡은 송윤아도 마찬가지. 덜렁대고 다혈질인 성격이 다소 과장된 느낌을 주지만, 억지로 우아하고 예쁜 척 하지 않는 모습이 비교적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녀의 역할은 최진실이 여러 트렌디 드라마에서 보여준 모습과 별반 다르질 않다. 호텔 매니저라는 직함은 새롭지만,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은 이런 류의 드라마에서 이미 많이 본, 그래서 조금은 진부한 느낌을 준다. 밝고 명랑하고 덜렁거리기는 해도 늘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캔디'풍의 여주인공은 이제 그만 봤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다.
많은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배용준의 경우도 아직까지 몸이 덜 풀린 듯 연기가 매끄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오랜만의 복귀작이어서 연기하는데 무척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오히려 역할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이 화면에서는 경직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배용준이 공백의 후유증을 떨치고 제대로 몸이 풀린다 해도 현재의 배역 성격으로는 별다른 변화를 가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극중에서 그가 맡은 신동혁은 세련된 매너와 냉철한 두뇌를 가진 M&A 전문가이다. 외모도 탁월하고 취미나 매너도 고상하고, 실수 하나 없이 냉정하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그의 모습은 모든 것을 다 갖춘 '백마 탄 왕자'의 모습 그대로다.
이렇게 인물을 비현실적으로 빈틈없고 완벽한 인물로 설정해 놓다 보니, 연기자로서는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담아낼 공간이나 여지가 없어져 버렸다. 시청자 입장에서 오랜만에 돌아온 그에게 기대했던 것은 과거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나 <첫사랑>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깃든 연기이다. 하지만 그 카리스마는 자신의 배역 안에서 연기자로서 감성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생기는 것이지, 역할을 무조건 화려하고 완벽하게 꾸민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
주연 4인방중 최근 가장 급부상한 송혜교는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가을동화>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해 역할이 어정쩡한 성격에 머물고 있다. 비극적인 여주인공에서 반항적인 부잣집 딸로 변신하는 과정이 단지 의상이나 소품의 변화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녀 나름대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보이지만 <가을동화>의 가련하고 비극적인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인터넷의 시청자 게시판에 "송혜교는 부잣집 딸보다 가난한 집 딸이 더 어울린다"는 글이 올라올까?
미니시리즈는 속성상 초반에 배역의 성격과 갈등 구조를 소개하게 되는데 초반에 드러난 문제를 얼마나 빨리, 효과적으로 수습하느냐에 <호텔리어>의 인기행보가 좌우될 것 같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