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식당등에서 볼수 있는 술 ‘산사춘’의 광고 포스터 카피다. 광고 모델은 이미연. 포스터 속 그의 표정은 자신만만하다. ‘남자 빼고’라는 말이 묘했다. 이미연이 ‘이혼녀’라는 사실이 어쩔수 없이 그 카피 위에 겹쳐졌다.
13일과 금요일이 겹쳤던 날, 이미연(30)을 만났다. 그는 검정 가죽재킷에 빨간 반팔 니트, 검정바지에 빨간 구두차림으로 나타났다.
그 카피가 ‘한 번 살아볼까? 남자없이.’라는 뜻으로 생각된다고 하자, 그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정말?” 하면서 하하하, 시원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최근에 찍은 거에요. 요즘 광고가 좀 들어왔어요.”
이미연은 이혼 후 ‘더 잘나가는’ 여배우다. 몇달전 동료 배우 김승우와 5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한 후 그에게는 CF 영화 드라마 음반 등 각종 제의가 쏟아지고 있다.
인기의 ‘척도’라는 CF도 최근 6편이나 찍었다. 다음달 시작하는 KBS의 야심작 ‘명성황후’의 주인공도 맡았다. 이혼 직후 이미연을 앞세워 제작된 발라드 편집 음반 ‘이미연의 연가’는 무려 130만세트나 팔려나갔다.
이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이미연의 슬픈 이미지가 발라드 분위기와 맞아떨어져 음반의 상품가치를 높여준 덕분이다. ‘개인적인 아픔’마저도 ‘상품’으로 팔리는 시대….
조심스럽게 이혼 얘기를 꺼냈다. 오히려 그는 아주 솔직하고 거침없었다. 어느 자리에선가 김승우는 ‘개인사’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이미연은 ‘이혼’ ‘이혼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했고, 김승우에 대해서도 ‘그 사람’ ‘그 이’같은 애매한 3인칭 대신 ‘김승우씨’라고 똑부러지게 말했다.
“영화계 사람들을 만나면 요즘 저에게 이런 농담도 해요. 아무래도 충무로는 ‘유부녀’보다는 ‘이혼녀’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는 다시 ‘만인의 연인’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제 이영애와 함께 충무로가 가장 잡고 싶어하는 여배우가 됐다. 현재 배창호감독의 ‘흑수선’을 촬영중이며 주인공을 맡은 ‘인디안 썸머’는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인디안 썸머’는 변호사와 여자 사형수와의 짧고 슬픈 사랑을 그린 영화. 박신양이 변호사로 나온다. 인디안 썸머는 가을이 시작되기 전 기습처럼 몰려오는 며칠간의 짧은 여름을 뜻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느낌이 참 좋았어요. 솔직히 나 아닌 다른 여배우가 이 역을 맡는다는 건 지금도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이 배역에 푹 빠졌거든요.”
이미연은 인터뷰 도중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기”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했다. 오랫도록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이어 그는 연기를 조금 알 것 같은 나이가 되면 설자리가 없어지는 한국 여배우의 비애에 대해, 한국의 영화 풍토에 대해, 등장하는 분량에 따라 주연과 조연을 가리는 단순무식한 구분법에 대해, 그리고 스태프들의 끈끈한 정이 느껴지는 영화 촬영현장의 매력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고보니 그는 벌써 16편째 영화를 찍고 있는 ‘관록있는’ 여배우였다. 그리고 30대 전후의 남성과 여성, 양측 모두로부터 호감을 사는 몇 안되는 여배우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88년 KBS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할 당시 그의 청순한 모습을 잊지 못하고, 여자들은 이혼 후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서 ‘동지적 유대감’을 느낀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젊은 여성이 다가와 사인을 부탁했다. 이미연은 흔쾌히 응해주며 젊은 여성에게 물었다. “근데, 내가 출연한 영화 제목이 뭔지 알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안되죠. ‘인디안 썸머’에요. 5월 5일에 개봉하니까 꼭 보러 와야해요, 꼭!”
▽이미연의 말말말
●어휴, 징그러워, 징그러워〓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자 지금은 생각도 하기 싫다며. 하지만 곧 “내일이면 생각이 또 바뀔지도 몰라요.”하고 덧붙였다.
●이 개쉐이∼, 누나한테 인사도 안하냐.〓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스태프와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일부러 괄괄한 말도 많이 한다고 자신의 ‘터프한’ 성격을 설명하면서.
▽음정, 박자 다 무시하고 오로지 ‘필’(feel)로만 부릅니다.〓‘이미연의 연가’CD에 수록된 68곡의 99%는 다 따라할 수 있지만 노래는 잘 못부른다고 겸손해하면서.
●여자이기 이전에 배우고, 배우이기 이전에 여잡니다〓지금도 김승우와 친분 관계를 유지하는 ‘우호적 이혼’을 했다는 항간의 얘기에 대해 꼭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라며.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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