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시절에는 비가 죽죽 내리는 변두리 동시상영관에서도 감동을 받아 토요일 야간 상영까지 8시간도 넘게 극장을 지킨 적도 있지만, 습작을 하고 소설을 쓰고 또 소설을 가르치면서부터 그런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읽고 보는 게 많아질수록 어떤 작품에서 다른 작품의 그림자가 자주 눈에 띄고 또 그 작가가 선택한 장르의 법칙과 다양한 테크닉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나이와 함께 영혼이 점점 두꺼운 갑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하여튼 서른을 넘긴 후로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그날 하루를 접은 것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임상수 감독의 '눈물'을 오전 10시부터 집필실에서 인터넷으로 보았습니다. 12시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밥 대신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돌아와서 오후 1시부터 다시 '눈물'을 보았습니다. 인터넷극장이 좋은 건 6시간 내에는 다시 그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것과 마음에 드는 장면만을 반복하여 살필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술기운이 올랐지만 눈은 오전보다 더욱 맑아졌습니다. 숨소리까지 죽이며 영화를 본 지금,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창문을 열고 막 흰 꽃을 틔우기 시작한 배나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읊조렸습니다. 그래, 저런 걸 써야 해!
디지털 영화가 무엇인지 솔직히 저는 모릅니다만, '눈물'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박하사탕'과 '초록물고기'를 만들었던 이창동 감독이 영화 만들기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그 '진심' 말이죠.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사실 전 그저 그랬습니다. '강수연은 왜 그렇게 옷을 벗지 않고 진희경은 또 왜 그렇게 옷을 많이 벗는 걸까?' 이딴 시덥잖은 생각만 하다가 극장을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눈물'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정말 감독이 만들고 싶어하는, 애정이 듬뿍 담긴 영화라는 걸 첫 장면부터 느낄 수 있었지요. 이건 창작자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 정말정말 만들고 싶었던 작품을 시작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몽땅 쏟고 또 그 이상을 퍼붓기 마련이지요. 돈이든 시간이든 아니면 피와 땀과 눈물이든.
애정이 깊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관념이 앞서기 쉽지요. 노력은 했으나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눈물'에서 임상수 감독은 그런 긴장과 과잉을 담담하게 벗어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의 영화처럼 고요합니다.
허나 이 세상을 향해 시비를 걸지 않는 감독이 어디 있겠는지요? 임상수 감독의 담담함이란 '눈물'의 대상이 되었던 그 10대들을 향한 배려인 듯합니다. 상처 입은 그들이 또 한 번 상처입지 않도록 따뜻하게 감싸기 위해 극한으로 치닫지 않은 것이지요. 모두 함께 다쳐 상처를 드러내자는 장선우 감독의 방법이 옳은지, 아니면 감쌀 부분은 적극적으로 감싸면서 희망을 찾자는 임상수 감독의 방법이 옳은지는 논란이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건 그 어느 경우도 쉽지 않다는 것이죠.
임상수 감독은 10대들에게서 두 문장을 건져 올립니다. 하나는 "나쁜 잠은 안자!"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이렇게 비겁해도 되는 거야?"입니다. 10대들은 아무리 탈선을 하더라도 그들 스스로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묻는다는 것이죠. 이 두 문장이 어찌 10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대한민국에서 늙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낮지만 단호한 경고이자 다짐일 터입니다.
임상수 감독님!
관객이 나고 드는 것이야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겠지요. 허나 이렇게 '진심'으로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비겁하게 작품을 만들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저녁도 소주 한 병으로 식사를 대신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도 취하지 않으면 다시 '눈물'을 보렵니다. 온몸을 던지는 네 명의 신인배우들을 통해 감독님의 눈물을 읽으렵니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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