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우 대하사극은 공영방송인 NHK의 몫이다. 그 많은 민영방송사들은 대하사극 제작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영국도 셰익스피어극과 같은 대형 시대극은 대개 BBC가 제작한다.
현대물에 비해 빠른 시간에 시청률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세트나 의상 등 기본 제작비가 일반 드라마에 비해 몇 배 더 드는 시대물을 '투자효율의 원칙'을 따져야 하는 상업방송에서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기 때문이다.
SBS의 <여인천하>는 그런 점에서 전혀 민영방송답지 않은 드라마이다. 매회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야외촬영에 의상과 가발, 소품 등 웬만한 드라마 서너 편 만들 제작비를 한 회에 투자하고 있다.
제작 발표회 때 SBS의 한 간부는 "시청률보다는 방송사의 이미지와 수준 높은 드라마를 만든다는 공적 서비스 차원에서 제작한다"는 말을 했다. 한마디로 손해볼 것 각오하고 만든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시청률이 너무 낮으면 속이 탈텐데, 다행히도 <여인천하>의 시청률은 현재 매주 3-4위 안에 들 정도로 호조를 띠고 있다.
드라마 초반에 부진함을 보였던 평균 시청률도 어느새 27%대로 올라섰다. 이 정도면 오로지 '작품의 완성도' 하나만 기대했던 방송사로서는 정말 즐거운 상황이다.
대하사극 <여인천하>가 다른 방송사의 사극과 차별화된 강점으로 내세우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강수연이라는 걸출한 연기자. '월드스타'라는 언론의 수식어답게 늘 주목을 받아온 그녀는 <여인천하>로 오랫동안 발을 끊었던 TV 드라마에 복귀해 방송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또 다른 인물은 연출자 김재형 PD이다.
그는 KBS에서 <용의 눈물>을 연출하면서 쇠락한 장르로 치부되던 대하 사극을 단번에 인기 드라마의 정상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주부 시청자의 전유물이던 사극에 남성 시청자를 끌어들였고, 드라마 내용이 정치인의 선거 홍보에 등장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사극 전성시대'를 연 당사자이다.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연기자와 사극에 관한 한 최고의 베테랑 연출자가 만났다면 <여인천하>는 분명 탁월한 드라마여야 한다. 그러면 과연 <여인천하>는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사극인가?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여인천하>가 드라마적 완성도에서 기존에 방송됐던 <용의 눈물>이나 <왕과 비>에 버금가는 드라마라고 말하기는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다.
주인공 정난정을 맡고 있는 강수연은 지금까지 까다로운 인물의 성격을 잘 소화하고 있다.
종종 지나치게 감정 표현이 과장된 모습이 보이기는 해도, 그래도 무난하게 자기보다 15년 연하의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영화에서 쌓아온 관록을 바탕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과 신분상승에 대한 야심이 가득한 정난정의 내면을 보여주는 '요기어린' 표정 연기는 탁월하다.
그녀가 극중 자신을 첩으로 삼은 윤원형의 본가에 '일편단심'이란 서약을 들고 당당하게 찻아가 본처인 이혜숙과 만나는 장면은 괜히 '월드스타'란 호칭이 붙은 게 아님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연기들이 다른 연기자와 어울려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녀 혼자의 '모노 드라마'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사극은 현대물과 달리 주인공 한 두 사람의 활약으로 드라마가 풀려지지 않는다.
다양한 인물군상과 그들이 얽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