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고전 <햄릿>을 2000년 뉴욕 버전으로 뒤바꾼 에단 호크 주연의 <햄릿 2000>, 나무뿌리로 만든 아이가 이웃사람들을 먹어치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오데사넥>, <오디션>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연출한 뒷골목 세계의 이야기 <데드 오브 얼라이브>, 벨기에인들의 성생활을 1인칭 독백 시점으로 재기 발랄하게 읊조린 <쾌락과 히스테리에 관하여>, 20세기말 캘리포니아 항구에서 벌어진 성 정체성의 혼란을 담은 <젠더니츠>, <블레이드 러너>의 뒷 이야기를 상상한 <아이. 케이. 유> 등은 분명 추천할 만한 판타지 영화들이다.
그러나 전주영화제가 펼쳐놓은 판타지의 세계를 경험하려면 뭐니뭐니 해도 '미드나잇 스페셜'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영화를 보면서 밤을 꼴딱 지새우는 올나이트 영화 보기 프로그램. 영화제 첫 번째 밤에 상영되는 '올나이트용' 영화는 6시간 짜리 장편 <꼬뮌>이다. 200여 명의 배우들이 파리 꼬뮌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면서 생생한 현장감을 전해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단지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 및 정치 개혁에 관해 자기만의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둘째 날 밤에 펼쳐지는 미드나잇 스페셜은 첫날 밤보다 더 흥겹다. 음악과 다큐멘터리가 결합된 음악 다큐멘터리들(일명 소니마주)이 줄지어 상영되기 때문. 독일 그룹 아타리 틴에이지 라이럿의 음악 세계를 담은 <디지털 하드코어+필립 바이러스 라이브 비디오 믹싱>, 밥 딜런의 영국 체류기를 담은 <돌아보지 마라> <돌아 보라 혹은 돌아보지 마라> 등 음악 다큐멘터리들이 영화제의 밤을 뜨겁게 달궈줄 예정이다.
셋째 날 밤엔 초현실주의 영화와 놓쳐선 안 되는 걸작 애니메이션이 대거 상영된다. 마법사, 요정, 악마 등이 등장하는 호세 모지카 마린스의 <오늘밤 네 영혼을 지배하라> <얼음 요정의 나라>, 르네 랄루 감독이 연출한 두 편의 환상적인 애니메이션 <시간의 지배자> <미개의 행성>이 셋째 날 밤의 주메뉴. 판타지의 정점을 경험하고 싶은 관객들에겐 정말 매력적인 유혹이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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