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키워드이자 전주영화제의 키워드인 '디지털'의 향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영화는 단연 '디지털 삼인삼색' 상영작.
지아 장커, 차이밍량, 존 아캄프라 감독이 '공간'을 주제로 변주해낸 3개의 디지털 중편이 '디지털 삼인삼색'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 상영된다. 지아 장커 감독은 <공공장소>를 통해 허름한 역과 버스정류장 등을 오가는 지친 사람들의 표정을 들여다보며, 차이밍량 감독은 <신과의 대화>를 통해 종교 집회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신과 어떤 식으로 소통하고 있는지를 관찰한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N-비전 대상을 수상한 존 아캄프라 감독은 <디지토피아>라는 30분 짜리 중편을 통해 디지털적 쾌락과 아날로그적 쾌락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비관적으로 담아낸다.
3개의 중편이 하나로 묶여 상영되는 '디지털 삼인삼색'은 디지털 영화 마니아에게 놓쳐서는 안 될 코스. 이밖에 디지털 영화의 현주소를 체크해보는 N-비전 섹션, 9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온 존 아캄프라 감독 특별전도 눈여겨볼 만하다.
N-비전 섹션 상영작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은 벨기에인의 특이한 성생활을 돌아보는 <쾌락과 히스테리에 관하여-벨기에인의 성생활>, 루이스 브뉘엘의 조감독 출신인 아르투로 립스타인 감독의 <그것은 인생>, 여자이면서 동시에 남성인 사람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을 다큐멘터리로 좇아간 <젠더니츠>, SF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의 다음 이야기를 섹스 코드로 뒤바꾼 <아이. 케이. 유>, 남인도로 떠난 독일 예술가 울리케 아놀드의 창작 여행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은 <지상낙원> 등.
이밖에 베타캠으로 제작된 일본영화 <깁스>, 인도영화 <마야>, 홍콩영화 <작은 기적> 등도 전세계 비디오 영화의 현재를 조감해 보기에 좋은 작품들이다.
존 아캄프라 감독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영화 중엔 재즈 음악가 루이 암스트롱의 삶을 담은 <루이 암스트롱의 세계>, 스토커의 정신세계를 다각도로 분석한 <스토커>, 파우스트가 맺은 악마와의 계약이 해킹당했다는 가정법에서 시작되는 <역사의 마지막 천사> 등이 볼 만하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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