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톱으로 자르거나 흉기로 내려찍어 스크린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이는 이른바 엽기영화나 폭력과 욕설로 뒤범벅된 영화들만이 간판을 내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요즘 극장가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국내 가족영화를 좀체찾아보기가 힘들다. 올들어서는 연초 개봉한 「2001 용가리」와 애니메이션 「더 킹」, 장희선 감독의 「고추말리기」등 3편 정도가 그나마 가족영화 리스트에 오를만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2000년 심의연감'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해 등급 분류를 받은 한국영화 61편 가운데 초등학생들도 볼 수 있는 `전체관람가'(모든연령가) 등급은 「2001용가리」「고해」「공포특공대」「평화의 시대」「필름을 찾아서」등 5편에 불과했다. 지난 99년 14편에 비해 3분의 1 가량 줄어든 것이다.
`전체관람가' 등급 영화의 이런 감소세는 90년대 접어들어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 81년부터 2000년까지 영화 관람등급 분포를 보면 `전체 관람가'영화는 80년대까지만 해도 한해 10-20편 가량 제작됐으나 90년(24편)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해95년(12편), 99년(14편)을 제외하곤 연간 5-6편의 영화만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가족영화 편수가 줄어든 것은 80년대만 해도 연간 100여편 이상 제작되던 영화가 90년대 들어 60여편으로 줄어든 충무로의 제작 실정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90년대 후반부터 이윤을 추구하는 대기업이나 창투사 자본이충무로로 몰려들면서 '돈이 되는' 작품을 만드는데 주력하는 영화산업의 환경변화를더 큰 이유로 꼽는다.
영화평론가 이명인씨는 "수익을 얻기위해 주관객층인 20대 취향에 맞는 소재와 주제만 개발하다보니 나머지 계층은 영화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김소희씨는 "영화가 유일한 대중오락 매체였던 60년대 이전에는 전체 연령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이 제작됐지만, 다양한 문화 매체가 나오면서 영화시장은 점차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틈새 시장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국내영화제작자들이 이처럼 가족영화를 외면함에 따라 어린이나 가족관객을 겨냥한 영화시장은 「쥬라기 공원」이나 「다이너소어」같은 할리우드 영화가 사실상독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몇몇 국내 영화사가 `소신을 갖고' 제작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관객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맥없이 무너졌다. 영화 제작자로 변신한 개그맨 심형래씨가 의욕적으로 만든「용가리」의 흥행실패가 단적인 예다.
영화 전문가들은 "국내 영화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어린이들의 정신적 성숙을유도하고 정서함양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가족 영화나 어린이들을 위한 성장 영화들이 제작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정책연구실장은 "영화의 TV방영을 전제로 방송사들이 영화제작에 투자하도록 제도화돼 있는 유럽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영화가 제작될 수 있는 제도적,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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