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뉴스]영화「친구」신드롬의 정체는 무엇인가

  • 입력 2001년 5월 16일 17시 25분


한국 영화사를 날마다 고쳐 쓰고 있는 영화 「친구」가 영화관 밖에서도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로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흥행 신기록을 세웠지만 「친구」만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친구」 신드롬은 가히 전방위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친구」 증후군의 `바이러스'는 세대와 지역과 계층을 뛰어넘어 무차별적으로 관객들을 감염시키고 있다.

「친구」 신드롬의 가장 두드러진 징후는 부산 사투리 열풍. 인근 경상도 지역은 물론 호남과 영동과 기호 지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부산 사투리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마다 용례를 들어 부산 사투리를 풀이한 글이나 「친구」 등장인물의 대사를 활용한 유머가 넘쳐나고 있고 신문의 만평이나 화장실 낙서에서도 단골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술자리에서도 "내가 니 시다바리가(내가 너의 심부름꾼이냐)"라거나 "고마해라,마이 뭇다 아이가(그만해라, 많이 먹었지 않느냐)"라는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면 동료들로부터 따돌림당하기 십상이다.

심지어 `쭈글시런(쑥스러운)'처럼 부산에서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던 사투리가「친구」 덕분에 되살아나고 있으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사회학자나 문화평론가들은 남성의 지위가 점차 무너져가고 있는 이 시대에 억양이 억세고 말투가 퉁명스런 부산 사투리가 향수를 자극하고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경상도 출신 대통령들 아래서는 깡패영화에 전라도 사투리가 판을 치다가 전라도 출신 대통령이 들어서자 억센 부산 사투리의 깡패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정치적 의미까지 부여하기도 한다.

친구 신드롬에 심하게 감염된 사람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증세는 물론 외모에서 나타난다.

동수(장동건 분)가 입었던 옷깃 넓은 남방을 비롯해 남성용 금목걸이, 선글라스, 여성용 스카프, 나팔바지 등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의 패션 소품은 부산 의류상가를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친구」의 사운드트랙 음반과 준석(유오성 분)이 불렀던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웨이」 음반도 인기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으며 비디오대여점에도 주인공들이 즐겨본 「용쟁호투」 등의 옛날 홍콩 무술영화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지난해 말부터 열기가 눈에 띄게 식었던 인터넷의 동창회 사이트들은 「친구」덕분에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다모임'이나 `아이러브스쿨'에는 부산지역 고등학교출신을 중심으로 회원 가입이 늘고 있으며 회원의 연령대도 20대에서 30대 이상으로 높아지고 있다.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마다 친구들이 `4인방'을 결성하는 사례도 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친구」의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한 공방이 오가고 있다.

또한 58년 개띠 동창들의 이야기를 담은 은희경의 소설 「마이너리그」의 인기나 서울 관훈동 갤러리 사비나가 「향수-디지털적 사고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으로」란 제목의 전시회를 마련한 것, TV 드라마의 복고 바람, 깡패 영화가 줄이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것 등도 모두 「친구」 신드롬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정이 이쯤에 이르자 눈치빠른 상혼이 설치는 것은 당연한 일. 컴팩코리아는 최근 노트북컴퓨터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용산전자상가의 매장 직원들에게 70년대 여고생 교복을 입히는 동시에 `친구 사연 보내기'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도 「친구」를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TV용 CF를 재빨리 교체했다.

음료 및 제과업계도 「친구」 인기에 힘입은 복고풍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신상품을 개발하기보다는 환타, 써니텐, 미린다, 네스티, 꼬깔콘, 가나초콜릿,부라보콘 등 낯익은 장수 제품이나 리바이벌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는 친구 신드롬에 대해 "계속되는 경제불황과 정치실종의 세태에서 관객들이 답답한 현실에 대해 한풀이를 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문화평론가 이성욱씨는 "학연이나 지연에 따른 인맥이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보통사람들이 손쉽게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친구밖에 없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정진홍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검정 교복과 짧은 머리로 상징되는 획일적인 학창시절에서 30대 이상의 남성이 절대평등의 원형을 찾고있다"고 풀이했다.

[연합뉴스=이희용 기자]heeyong@yna.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