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150세까지 살지도 모르고, 미국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고 집에서 잠옷차림으로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리처드 기어 같은 백마 탄-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얀 리무진을 탄-기사는 절대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가 그 엄연한 사실을 알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서양 여성들은 비로소 중년이 넘으면 이 세상에 산타클로스는 없듯이 '백마탄 기사'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저금을 털어 하얀 색 벤츠를 산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0년새 남편의 호칭이 일제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 '오빠'로 바뀌었다. 그전의 '아빠'에서 '오빠'로 바뀌었으니 평등화(?)를 위한 진일보로 볼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백마탄 기사'를 기다리는 격이다.
데드몬드 모리스같은 동물학자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짝짓기에서 여자보다 남자가 서너살 정도 위라고 했다. 그 이유는 남자가 나이를 통해 장악력을 갖기 위해서이다.
'어머-세상에, 이런 게 있어요?'하고 여자가 물으면 '음-내가 이것 벌써 몇해 전에 봤지'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요즘 여성들은 '백마탄 기사'를 기다리지 않는다. 제발로 걸어가 남자를 찜한다. 굳이 자기보다 키도 크고 나이도 많고 돈도 많은 남자를 고집하지 않는다.
캠퍼스에는 '밥그릇수'를 개의치 않는 누나 -동생 커플 이 엄청나고 직장에서는 우리가 남인가요 못지않은 여자선배-남자후배의 짝짓기가 부쩍 눈에 띈다.
이제 스스로 '하얀 자동차'를 구입할 여성은 아빠나 오빠가 굳이 필요없는 모양이다. 대신에 '누나!'라고 부르는 나이 어린 남자를 보며 '귀엽고 보살펴 줘야 하고 겸손하고 참 사랑스러운 남자'라고 느낀다. 한걸음 나아가 동생(?)을 보며 여성은 '내가 한 영혼을 완전히 장악했구나' 하는 뿌듯한 기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연예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불암씨 같은 아빠형이 인기를 모은 적도 있고 한석규 같은 오빠형, 최민수 같은 색다른(?) 오빠형이 여성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요즘은 '누나라고 부를 수 있는 동생'형이 여성에게 더없이 매력적이다.
이러한 시대의 트렌드, 시대의 혜택을 듬뿍 받은 탤런트가 바로 김호진이다. 조금의 느끼함과 조금의 과장도, 으시댐도 없이 지극히 민주적인 평등의 캐릭터를 가졌다.
독한 에스프레소 그 자체라기 보다는 부드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카푸치노의 산뜻한 거품과 카페라테의 부드러움이 그에게 있다. 기존의 남성들이 지닌 강인한 근육의 힘과 터프함에 끌렸던 여성들이 그에게 다가간다.
그런 점에서 김호진은 새로운 시대적 코드와 감성을 지녔다. 아빠도 오빠도 아닌, 부담없는 길동무로서 손잡고 편안히 걸어갈 '연하남' 이미지는 새 시대가 부여한 사랑스러운 매력 이다. 바로 김호진의 매력이다.
전여옥<방송인·㈜인류사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