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왕권을 장악한 뒤 청주지역의 반란에 시달리고 있다. 고려와 후백제의 접경지역인 청주지역은 왕건 집권이후 가장 먼저 반란의 기치를 올려 왕건을 괴롭혔다.
지난주 청주에서 난을 일으킨 선장과 임춘길이 처형됐지만 청주와 웅주(지금의 공주)지역은 이후에도 잦은 반란으로 왕건의 심기를 어지럽힌다.
지난주 철원지역에서 난을 일으켰다가 처형된 환선길의 처남인 이흔암 역시 공주지역을 기반으로 한 장수로 후에 반란을 도모하다 처형된다.
왕건은 이같은 두 지역의 잦은 반란 때문에 죽으면서 후손들에게 남겼다는 훈요10조에 ‘차현(차령산맥) 남쪽, 공주강(금강) 바깥은 배역의 땅이므로 그곳 사람들을 관직에 등용치 말라’는 글을 남긴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문제의 ‘배역의 땅’에 대해 후백제의 영토였던 호남지역 전체를 의미한다는 해석과 차령산맥 남쪽과 금강 사이의 공주 청주 지역을 의미한다는 설로 나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훈요십조는 지역차별의 원류로 기억되고 있다.
‘태조 왕건’ 제작진은 앞으로 전개될 드라마에서 훈요십조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으나 훈요10조를 완전히 무시하는 방안을 채택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연출을 맡은 안영동PD는 “훈요 10조가 왕건의 직접적인 기록이라는 증거는 없다”면서 “후대에 조작된 내용이 아닌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선 아예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훈요10조는 943년 왕건의 구술을 받아 적었다가 1010년 거란족의 침입으로 왕실문서가 전소된 뒤 고려조 8대 현종 때 고려실록을 재편찬한 최제안의 집에서 발견돼 재정리된 것으로 돼 있다. 이 때문에 현종을 옹립한 신라계 신하들이 후백제계 인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안영동PD는 “청주와 공주지역의 반란사건은 개개의 사건으로만 다루고 왕건에 대해서는 지역차별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통합을 이뤄낸 영웅으로 그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드라마를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이뤄내는 부분에서 종결지어 ‘훈요10조’에 대한 빌미를 남기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