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봇… 스포츠카…'꿈'을 조립해요"

  • 입력 2001년 6월 17일 19시 45분


◇플라모델 제작 '모델러'의 세계

"중학교 3학년 때 자동차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모델을 구입했지요" "아 그러세요. 저는 지금 한창 로봇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13일 오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 내 '플라모델(Plamodel·플라스틱 모델의 준말)' 전문매장. 이동연씨(32·바이오 벤처기업 근무)와 조내준씨(29·제약회사 근무)가 함께 만나 대당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승용차와 로봇을 주제로 '거창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람보르기니', '로봇'은 실제 크기의 30∼40분의 1에 불과한 조립식 모형. 이들은 경력 20년이 넘는 모형 만들기 의 '고수'들로 최신형 전투기에서부터 사이버게임의 로봇에 이르기까지 온갖 대상을 모형으로 조립해내는 '꿈의 연금술사'들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대리만족

▽‘꿈’을 조립하는 연금술사〓일명 ‘모델러’로 불리는 플라모델 애호가들은 다 큰 어른들이 조립식 장난감 만들기에 푹 빠져 있는 이유에 대해 “저렴한 비용으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나 책자에서나 볼 수 있는 탱크와 전투기를 직접 소유할 수는 없지만 모형을 만들다보면 실제 이상의 소유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소유욕’의 대상이 되는 모델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3년 전 강원도 무장간첩 사건이 한창일 때 총 모형이 동이 나더니 최근에는 ‘스타크래프트’의 캐릭터들과 영화 ‘진주만’에 등장하는 비행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여느 동호회 못지않게 열성적이고 활발한 온·오프 모임도 이루어진다.

인터넷 등에 온라인 동호회만 40여개에 이르며 매년 한 차례 모델러의 기량을 겨루는 콘테스트도 열린다. 최근에는 고등학교에서도 모형 제작 특별활동반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고증’ vs ‘창작’〓자동차 모형 제작이 특기인 조시형씨(29·카오디오 디자이너)는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차체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에서부터 배선, 도색까지 실제 자동차와 똑같이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부품으로 사용할 물건을 구하느라 틈만 나면 회사 쓰레기통을 뒤지기 때문에 회사에서 “나잇값을 못한다”는 소리도 듣는다.

모형 전문매장인 ‘아셈하비’의 홍관의 사장은 “모델러들은 크게 ‘고증파’와 ‘창작파’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고증파들은 일단 제작할 모델을 정하고 나면 신문기사 잡지 인터넷 등을 통해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필요하면 역사서까지 읽고 모델 제작에 참고한다. 각종 비행기의 제원부터 성능, 제작연도를 암기하는 모델러들도 있다.

반면 10, 20대 초반의 창작파들은 전쟁 무기보다는 만화 게임 캐릭터를 좋아한다. 또 원형에 가깝게 만들기보다는 자유분방한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직접 설계도를 그려가며 재료를 손수 구입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도 있다고 홍 사장은 전했다.

▽잡념 없애는 데 최고〓“정신 산만한 사람들에게 모형 제작은 집중력을 키우는 데 최고예요.”

모델러들은 “설계에서부터 도색에 이르기까지 매우 정밀한 손놀림이 필요하기 때문에 집중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조시형씨가 최근 한 정유회사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장식용 유조차는 무려 5개월이 걸렸다.

“‘어른이 무슨 장난감이냐’며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있지만 막상 우리의 작품을 보고 나면 선물로 하나 줄 수 없느냐며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죠.”

“작품 하나하나가 자식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모델러들은 8월 코엑스몰에서 열릴 건담 로봇 콘테스트에 내보낼 ‘자식’ 이야기로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모습 그대로" 전투현장도 재현

플라모델은 비행기, 전차, 자동차, 오토바이, 배, 사람 등 다양하다. 1개의 모형만 만드는 단품 제작이 대부분이지만 여러가지 모형을 이용하는 디오라마도 인기를 끌고 있다.

디오라마는 여러 모형을 배경과 함께 설치해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것. 병정, 비행기, 전차 모형 등을 이용해 하나의 역사적인 전투 현장을 재현하기도 한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전국의 모형 전문판매점은 약 400곳(서울 경기지역 150여곳). 단품의 경우 국산은 1000∼3만5000원 정도지만 수입품은 50만원을 웃도는 것들도 많다. 최근에는 실제 자동차, 보트, 헬리콥터 등과 마찬가지로 엔진을 얹은 무선모형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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