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편집음반<동감>유감

  • 입력 2001년 7월 6일 13시 32분


이미연과 이영애를 앞세운 편집음반이 나왔을 때, 친구들과 우스개 소리를 했습니다. 이러다가 장동건이나 유오성을 묶어 또다른 편집음반이 나오는 게 아닐까? 영화 <친구>의 이미지를 조금 빌리면서 사나이의 우정과 의리를 중심에 두면 꽤 팔리겠는 걸.

우스개 소리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뮤직채널에서 임재범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길래, 그가 새로운 음반을 내었나 하고 유심히 살폈습니다. 노래가 귀에 익습니다. '너를 위해'. 이 노래는 영화 <동감>의 주제곡이 아니었던가요?

헌데 뮤직비디오의 화면은 그 영화의 장면들이 아닙니다. 장동건, 유오성, 원빈, 정준호, 구본승이 차례차례 나오는군요. 이렇게 저렇게 멋진 사내들을 엮어가며 친구나 추억 같은 단어들이 한자로 깔립니다. 노래가 끝날 때 다시 보니, '동감'이란 편집 음반을 홍보하기 위해 뮤직비디오를 다시 만든 것이더군요.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건가요? 편집음반의 타이틀은 '동감'이니까, 대중들에게 익숙한 임재범의 '동감'이란 노래를 앞세우고, 표지 사진과 뮤직비디오는 영화 <친구>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사나이들의 모습을 담는다. 말 그대로 멋진 편집이군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조성모의 '불멸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105곡이란 노래를 편집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영화의 이미지를 뒤섞어 편집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영화의 흔적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 편집 음반에는, <주유소 습격사건>의 주제곡인 배기성의 '오늘도 참는다'와 <공동경비구역>에서 빛을 발한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까지 담겼습니다. 노래도 섞이고 영화도 섞이고 이미지도 섞이고, 이런 게 동감일까요?

저렴한 가격에 많은 노래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상시대가 도래했고 이미지로 예술품을 파는 세상이 왔다지만, 이렇게 다양한 노래를 한꺼번에 주욱 담는 것은 어시장에 여러 가지 생선을 늘어놓고 되는 대로 싸게 파는 것이 연상되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과연 이 편집음반에 담긴 노래를 부른 가수들 중에서 몇 명이나 이런 식의 음반에 자신의 이름과 목소리를 넣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편집음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을 올리겠지만, 그것은 이미 잘 익은 과일을 입맛에 맞게 톡톡 따내어 한 바구니에 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모음에 입맛을 들인 대중이 늘어날수록 정규앨범의 판매는 현저히 줄어드는 법이니까요.

가수 이은미씨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립싱크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자신만의 빛깔을 지니며 가수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지요. 확실히 그녀는 발라드와 소울을 지나 이제 국내 여성 가수 중에서는 거의 드물게 락의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그녀의 노래들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저기 편집음반에, 그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실리고 있습니다. 편집음반 <동감>에도 역시 그녀의 노래 '어떤 그리움'이 실렸네요.

문학계에도 기획에 주안점을 둔 소설모음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반드시 그 소설을 지은 작가의 동의를 구해야 하지요. 어떤 노래가 정규 앨범이 아니라 다른 모음집에 실릴 때, 작곡가와 작사가는 물론이고 그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까지 동의를 구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상관하지 말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법을 뛰어넘는 예술과 상식의 영역이겠지요.

연가도 좋고 애수도 좋고 동감도 좋지만, 이런 식의 편집음반은 정말 가끔씩 10년에 한 번씩만 나왔으면 합니다. 불가능한 바람이겠지요?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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