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시청률 1위를 장악하고 있는 KBS1 ‘태조 왕건’에서는 왕건의 첫째 부인으로 나와 특유의 청아한 이미지를 선보였고, MBC 일일드라마 ‘결혼의 법칙’(월∼금 오후 8시 20분)에서는 디자이너 고은새 역으로 나와 현재 연하남과 한창 ‘작업 중’이다.
12일부터는 KBS2 오락프로그램 ‘야! 한밤에’(목 밤 11시)의 MC를 맡고 있다. 여자 탤런트가 서른 가까운 나이에 오락프로그램의 MC를 맡은 것은 흔치않은 일이다.
박상아의 이런 뒷심이 궁금해 12일 서울 여의도 MBC 로비에서 그를 만났다. 그런데 박상아는 보자마자 기자 얼굴을 가리키며 “어, 어디서 봤는데…”라고 했다. “저를 알아요?”했더니 “아무튼 봤다니까요”만 되풀이했다. 기자는 3년 전 박상아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갑자기 이렇게 잘 풀리는 이유가 뭐죠?
“그동안은 줄곧 ‘공주과’였어요. 기본이 재벌집 딸(‘젊은이의 양지’)이고 최소한 지방유지의 딸(‘꼭지’)은 했으니까요. 그러다 ‘야! 한밤에’의 ‘싱글파티’ 코너에서 제 평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네요.”
그는 얼마 전 ‘싱글파티’ 코너에서 큰 눈을 휘둥그레 떠가며 깔깔대고 웃고, 별 것 아닌 것에도 이맛살을 찡그리는 털털한 ‘자연인’ 박상아의 모습을 보여줬다. 박상아 특유의 여성스럽고 단아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니, 저럴 수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결과론이지만, 그런 ‘장사되는’ 이미지를 왜 진작에 내놓지 않았어요?
“알면서 그러시네. 95년 데뷔하자마자 ‘젊은이의 양지’를 했는데 생긴 것만 보고 그 때부터 이미지가 고정됐지요. 당시만 해도 그런 역할로 충분히 부각될 수 있었으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그런데 그게 계속 제 발목을 잡아온 거예요. 비슷한 ‘공주과’ 배역만 섭외가 들어왔지요”
사실 박상아는 예전부터 괄괄한 성격이었다. 98년 7월경 박상아는 SBS 드라마 ‘홍길동’ 출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한 일간지 기자가 방송 제작 환경에 다소 불만을 표시한 그의 발언을 확대해 ‘박상아, 방송 제작 시스템 정면 반박’이라는 요지의 기사를 썼고, 그는 한동안 방송사로부터 “이제 연기 안 한다며?”라는 비아냥섞인 말을 들었다. 이후 ‘홍길동’ 시사회를 겸한 식사자리에서 박상아는 연신 삼겹살을 구워가며 기자에게 “그 양반, 정말 가만 두지 않겠다”며 1시간 넘게 씩씩거린 적이 있었다.
-박상아씨를 포함해 요즘 30세 즈음의 여자 연기자들이 유난히 각광받고 있네요. 이영애, 이미연씨 등등….
“분명한 것은 경력이 쌓인 후 약간 늦게 ‘물을 만나는’ 게 제일 이상적인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성공할 확률이 낮은 만큼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내 편한 대로의 해석이니까 너무 믿진 마시고.”
-결혼 안 해요?
“어릴 때는 스무 살에 시집가겠다고 했는데, 요즘은 전혀 생각이 없어요. 그렇다고 독신주의는 아니고, 바쁘면 끼니를 걸러도 잘 못 느끼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죠.”
박상아는 1시간 조금 넘는 대화 도중 때로는 천방지축형 직설화법으로, 때로는 ‘비보도’를 전제로 한 파격적인 내용으로 듣는 이를 당혹스럽게 했다. 미국 생활(1985∼1993년)이 연기에 미친 영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로스앤젤레스에서만 살아서 다른 미국 문화는 잘 몰라요. ‘LA 촌년’이었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헤어지면서 “짙은 향수는 아니지만 은은한 방향제 같다”는, 한 중견PD의 다소 낯간지러운 촌평을 전했더니 박상아는 엉뚱하게 “나 둘 다 잘 안 써요”라고 했다. 끝까지 정말….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