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여인천하’(밤9시55분)가 평균 시청률 40% 내외를 유지하며 인기를 끌게 만든 일등공신은 문정왕후(윤비)역의 전인화다. 특히 지난주에는 ‘태조 왕건’의 시청률을 5.9%포인트(AC닐슨코리아 기준)나 앞섰다.
‘여인천하’에서 극적인 재미의 열쇠는 아직도 정난정(강수연)이 아닌 문정왕후가 쥐고 있다. 최근 회임의 진위 여부로 경빈 박씨(도지원)와 대결을 벌이며 궁중을 폭풍전야로 몰고가는 진원지도 바로 문정왕후.
연출을 맡은 김재형 PD도 “지금까지 ‘여인천하’의 최고 인기비결은 전인화의 카리스마”라고 말했다. 평소 온화한 이미지인 그가 조선시대 최고 악녀로 꼽히는 문정황후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인화표 문정왕후’는 독기에 사무친 악녀나 권모술수의 화신과는 거리가 멀다. 표독스러움에 있어서는 경빈 박씨에게 밀리고 예리한 상황 판단력은 정난정에게 한수 뒤진다.
그는 오히려 고집스런 원칙주의자다. 진작 중종의 눈 밖에 난 조광조를 옹호하고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는 비빈들에게도 ‘중궁전의 주인으로 내명부의 기강을 잡겠다’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
“수렴청정을 20년이나 할 정도로 똑똑했던 문정왕후가 처음부터 극악스럽지는 않았을 거예요. 못난 임금의 거듭된 실정에 실망하고 비빈들로부터 계속 핍박을 받으면서 응어리진 상처들이 정난정을 만나면서 비이성적 권력욕으로 폭발하게 된 것 아니겠어요.”
전인화는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일주일 내내 대본을 손에 잡고 산다. ‘고시공부하듯’ 밑줄을 긋고 의문표를 달면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다는 것. 유행어가 된 그녀의 대사 ‘뭐라? 니가 정녕 단매에 맞아죽고 싶은게냐’도 그런 연구의 결과다.
“대본엔 ‘뭐야?’라고 써있었는데 어감이 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뭐시라?’ ‘뭐라고?’ 등등을 다 실험해보다 고른 거예요.”
대사처리뿐만 아니다. 정난정이 구중심처의 속사정을 낱낱이 꿰뚫는 설명을 할 때도 원래 대본의 지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나 ‘솔깃해하며’다. 하지만 전인화의 표정에 쓰인 지문은 ‘오호, 니가 제법이로구나’이다. 경빈 박씨와 한판 눈싸움이 끝난 뒤에도 대본은 복수의 칼을 가는 표정을 요구했지만 그는 설움에 복바친 눈물을 흘렸다.
“남편(유동근)에게서 많이 배워요. 인물에 진짜로 몰입하면 정석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석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그가 문정왕후 역을 맡은 것도 “당신 속엔 문정왕후가 숨어있다”는 유동근의 격려(?)때문이었다.
“처음엔 ‘어휴 내 속에 무슨 독한 면이 있다고 이이가 이러나’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유해보여도 집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엔 제가 강해요. 아이들 야단을 칠때도 그 자리에서 싹싹 빌때까지 매섭게 야단치는 것도 저거든요.”
그렇게 부드러운 웃음 뒤에 숨어있는 단호함. 그녀의 진짜 매력이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