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는 거장 고(故)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遺作) 프로젝트를 할리우드의 흥행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촬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인간인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 진짜 인간이 되고자 한 로봇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데이비드(할리조엘 오스먼트)는 감정이 있는 열한살짜리 로봇 소년. 스윈튼 부부는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냉동 보관되어 있는 친아들 대신 데이비드를 데려와 아들로 삼는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진짜 아들이 퇴원해 ‘엄마’(프랜시스 오코너)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엄마’는 질투를 느낀 데이비드가 아들을 해칠까봐 데이비드를 숲속에 버리는 게 첫 부분.
두 번째는 ‘진짜 소년’이 되면 ‘엄마’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 데이비드가 피노키오를 인간으로 만들어 준 동화속의 ‘푸른 요정’을 찾아 나서는 모험이다.
마지막 단락은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다. 외계인처럼 생긴 미래의 지구 지배 종족은 푸른 요정 동상 앞에서 얼어붙은 데이비드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는 스필버그와 큐브릭이 공존한다. 스필버그는 큐브릭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시계 태엽 오렌지’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큐브릭 작품의 이미지를 영화 속에 녹여냈다. 템포가 느린 첫 번째 이야기 등은 확실히 큐브릭의 색채가 강하다.
그러나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어린 소년이 낯선 환경에서 겪는 모험은 스필버그의 ‘E.T.’를 떠올리게 한다. ‘오즈의 마법사’와 ‘피노키오’를 섞어놓은 듯한 동화 같은 내용도. 무엇보다 큐브릭이라면 암울하고 날카롭게 끝냈을 결말을 뭉툭하게 다듬어 동화적으로 마무리한 것은 스필버그의 ‘손길’이다.
영화가 던지는 묵직한 윤리적 질문들은 큐브릭 쪽. 영화는 도입부에서 과학자의 입을 빌려 직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랑의 감정을 가진 로봇에 대해 인간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A.I.’는 미국에서 개봉 첫 주에만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결코 대중적인 감독이 아니었던 큐브릭이 ‘스필버그 힘을 빌려, 죽어서 처음으로 1위를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돌았지만 스필버그의 입장에서는 흥행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던 편. 오히려 일본에서는 역대 최고의 개봉 주말 흥행 기록을 수립하며 찬사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큐브릭 마니아’나 ‘스필버그의 골수팬’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큐브릭 영화라고 하기엔 따뜻하고, 스필버그 영화 치고는 무겁다. 하지만 ‘불과 얼음’처럼 다른 두 거장은 2시간24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묘한 화학적 결합을 이뤄냈다.
스필버그는 큐브릭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심금을 울리는 감동과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특수효과,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어른을 위한 생각하는 동화’를 빚어냈다. 10일 개봉.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큐브릭 15년간 구상…스필버그가 각본-연출
1969년 브라이언 앨디스의 공상과학 단편소설 ‘슈퍼 토이스 래스트 올 섬머 롱’이 원작. 큐브릭은 이 소설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했다.
긴 촬영기간으로 유명한 큐브릭은 영화찍는 도중에 주인공을 맡은 아역 배우가 성장할 것을 우려해 실제 로봇을 만들어 촬영하는 것까지 검토했다.
스필버그와 ‘A.I.’에 대해 상의해 온 큐브릭은 1994년 “이 영화는 스필버그의 감성이 필요하다”며 15년 간이나 욕심냈던 연출을 포기하고 스필버그에게 연출을 직접 부탁했다.
99년 큐브릭이 사망한 후 스필버그는 큐브릭의 메모 등을 토대로 최종 각본을 썼다. 스필버그가 각본을 직접 쓴 것은 자신의 작품 ‘미지와의 조우’(1977년) 이후 처음. 당초 큐브릭이 구상한 ‘A.I.’의 결말은 암울했다.
루즈시티나 섹스로봇 등 성에 대한 묘사도 훨씬 노골적이었으나 스필버그는 ‘섹스’를 과감히 도려냈다. 덕분에 큐브릭이 만들었다면 ‘18세 이상’ 등급을 받았을 이 영화는 ‘12세 이상 관람 가’가 됐다.
1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은 오스먼트의 열연이 돋보인다. 로빈 윌리엄스와 메릴 스트립이 각각 만물박사와 푸른 요정으로 ‘목소리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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