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와이키키 브라더스' 3류밴드 변두리 인생 '코끝 찡'

  • 입력 2001년 10월 22일 18시 24분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은근한 힘을 가진 영화다.

관객의 감성을 콕콕 찔러 곧장 눈물을 쏟게 만드는 ‘즉석 감동’은 없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 속의 울림이 커져간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꿈에서 멀어진 관객일수록, 현실의 삶에 지쳐 있는 관객일수록 그 울림은 더 크게 다가온다.

스타가 등장하지 않는 저예산 영화인데도 올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돼 호평을 받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3류 밴드의 이름. 노래방에 밀려 ‘고추 아가씨 선발대회’나 시골 잔치에 불려다니는 신세다. 어렵게 ‘수안보 와이키키 호텔’의 나이트 클럽에 자리잡았으나 7인조가 3인조로 줄어든다. 그나마 3인조는 다시 두명으로 줄고 급기야 보컬이자 리더인 성우(이얼)는 혼자 연주하고 노래하는 ‘원맨 밴드’로 룸살롱에서 취객의 반주나 해주는 신세로 전락한다.

주요 배경인 ‘수안보 와이키키’는 촌스런 이름부터 상징적이다. 수안보와 하와이의 거리 만큼이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성우가 어린 시절 꿈꾸던 ‘비틀스’와 ‘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나타낸다.

영화에서 주제가 압축된 대목은 성우가 룸살롱에서 벌거벗은 채 노래 ‘아파트’를 부르는 모습이다. 술집 아가씨들과 홀딱 벗고 난장판을 벌이던 취객의 강요로 성우도 벌거벗고 연주한다.

성우가 초점잃은 눈으로 바라보는 반주기의 화면은 어느 순간 꿈많던 10대의 성우가 밴드 멤버들과 알몸으로 해변을 질주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무엇하나 두려울 것 없던 그 시절의 밝은 미래처럼 펼쳐진 해변가와 초라한 성우의 밀폐된 룸살롱이라는 이질적 공간의 대비로 관객들은 꿈의 상실이 주는 씁쓸함을 맛보게 된다.

5년전 장편 데뷔작 ‘세친구’에서 변두리 10대 소년의 일상을 통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오늘과 내일을 다뤘던 임순례 감독이 이번에는 주변부 인생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30대 후반에 이른 중년의 과거와 현재를 묻고 있는 셈이다.

일상을 소박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비슷하지만, ‘와이키키 브라더스’에는 대중성을 고려해 아기자기한 재미와 웃음이 더 많다.

“내가 진짜 이영자면 2만8000원 내고 여기서 술 못먹지”라며 능청떠는 ‘이엉자’와 ‘너훈아’ 같은 ‘가짜 인생’들이 그 예다.

성우의 첫사랑 인희(오지혜)가 일상적인 채소 장사를 걷어치우고 성우를 따라 무대에 서는 설정도 해피 엔딩을 바라는 대중적 취향을 겨냥한 결말이다. 반짝이 무대 의상을 입은 인희가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얼핏 희망적이다.

그러나 이 모습은 오히려 같은 노래를 되풀이하는 레코드판마냥, 인희의 노래마저도 반복된 일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것이 희망으로 비치는 것은 영화속에서나마 한가닥 위안을 얻고 싶은 고단한 인생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 아닐까. 27일개봉. 18세 이상.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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