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눈물샘' 자극
영화 ‘아들의 방’은 이 세상에서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아버지의 부정(父情)을 가슴찡하게 그린 영화다.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항구 마을. 정신과 의사인 조반니(난니 모레티)는 출판사 일을 하는 아내 파올라(로라 모란테)와 사춘기의 남매를 키우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어느날 조반니는 아들 안드레(주세페 산펠리체)와 함께 조깅을 하기로 약속하지만 환자의 급한 연락을 받고 약속을 깬다. 조반니가 환자의 황당한 사연을 듣고 있는 순간 아들은 친구들과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간다.
이 작품은 웃고 떠들던 그 안드레가 차가운 시체로 돌아온 뒤 남은 이들이 겪는 상처와 갈등, 극복 과정을 담았다.
가족 누군가의 죽음과 슬픔, 그리고 눈물. 얼마나 진부한 소재인가. 이런 영화에 더 이상 내줄 눈물은 없다는 게 대다수 관객의 고집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조반니를 중심으로 허물어지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섬세한 심리 묘사로 어느새 관객들의 눈물 샘을 자극한다. 배우들이 먼저 울고 불고 하는 ‘눈물 강요형’이 아니다. 영화속 배우들은 애써 슬픈 감정을 억누르려 한다. 그래도 슬픔은 비어져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 배우들의 절제된 감정이 관객들에게 눈물을 전염시키는 것이다.
“그때 그 약속만 깨지 않았다면 안드레가 살아있을 텐데.”
조반니는 이같은 불가능한 ‘If’를 수백번 떠올리며 아들과 조깅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아내 파올라는 죽은 아들에게 온 소녀의 편지에서 안드레의 흔적을 찾고, 조반니는 답장을 준비한다.
특히 언제나 냉정한 입장에서 환자의 사연을 듣어야 할 정신과 의사 조반니와 소중한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의 조반니를 교차시키는 게 인상적이다.
‘아들의 방’은 좌파의 정신적 토양에서 권력과 종교 등을 풍자해온 모레티의 작품 세계에서도 특이한 작품이다. 어렵지도 않고 화려한 테크닉도 없지만 인간의 문제가 담겨 있다. 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모레티의 힘이자 영화의 매력 포인트다.
◇냉소속에 감춰진 열정
‘나의 즐거운 일기’는 난니 모레티 감독이 왜 ‘이탈리아의 우디 앨런’으로 불리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스쿠터를 타고’ ‘섬들’ ‘의사들’ 등 감독의 일기에서 발췌한 3편의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구성된 코미디.
한마디로 모레티가 세상에 대해 퍼붓는 독설로 채워져 있다. 가볍지만 날카롭고, 겉으로는 냉소적이나 내면에는 모레티의 열정이 돋보인다.
‘스쿠터…’와 ‘섬들’은 각각 로마 거리와 시실리의 여러 섬을 여행하는 기행 형식으로, ‘의사들’은 모레티 자신의 피부암 투병기를 다뤘다.
이 작품의 ‘모레티 씨’는 정말 바쁜 사람이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을 만나 끊임없이 떠들고 혹평을 해 댄다. 형편없는 영화임에도 손님이 꽉찬 영화와 이를 호평한 신문의 영화 평, TV는 물론 철학자 칼 포퍼까지 그의 날카로운 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TV에서 한 출연자가 ‘68 세대’의 좌절을 고백하자 “왜 우리 모두야. 나는 여전히 정의롭고 빛나는 40대”라고 외친다.
‘의사들’에서 모레티의 유머와 풍자는 절정에 이른다. 가려움증으로 쉴새 없이 온몸을 긁어대던 그는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중국 침술 치료까지 받지만 모든 게 허사다.
마침내 밝혀진 가려움증의 원인은 임파선 암. 모레티는 처방받은 약들로 가득 채워져 흡사 약국처럼 된 공간을 보여준 뒤 “치료를 위해서는 아침에 마시는 물 한잔이 중요하다”며 현대 의학을 비웃는다. 서울 동숭동 하이페텍 나다에서 단관 개봉한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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