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부산은 ‘태국 영화의 날’이었다. 이날 낮에는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의 하나로 태국 영화를 조망하는 세미나가 열린데 이어 밤에는 ‘태국의 밤’ 행사가 마련됐다. ‘태국의 밤’ 행사에는 태국 영화계 인사 60여명이 참석했다. 이처럼 한 국가의 영화인들이 대규모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태국 영화 특별전’이 마련돼 11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부산영화제가 특정 국가의 영화를 모아 상영하는 것도 처음있는 일이다. 이중 큰 관심을 끄는 영화는 폐막작인 ‘수리요타이’. 예매 1시간 반만에 전 좌석이 매진된 대하역사극 ‘수리요타이’는 16세기 포르투갈에 맞서 태국의 독립을 지켜낸 실존 인물인 수리요타이 여왕의 생애를 담은 작품이다.
태국의 차트리 찰레름 유콤 왕자가 감독을 맡았으며 왕실의 지원을 받아 태국 영화사상 최다 제작비인 5억바트(약 150억원)를 투입했다. 이밖에 ‘방라잔’ ‘잔다라’ 등도 관심을 끄는 작품들.
태국에서 자국 영화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댕 버럴리와 일당들’이 성공을 거두면서부터. 이후 논지 감독은 99년 영화 ‘낭낙’으로 태국 내의 각종 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영화가 처음 상영될 당시 태국 내에는 헐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이 같이 개봉됐으나 태국내 흥행에서 ‘타이타닉’을 앞섰다.
지난해 태국에서는 용유스 통콘턴 감독의 ‘철의 여인들’이 역시 할리우드 대작들을 물리치고 그 해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태국에서 올 상반기 흥행 1, 2위를 차지한 작품 역시 태국 영화다. 덕분에 97년 외환위기 당시 12%까지 떨어졌던 태국의 자국 영화 점유율이 올해는 20%에 이를 전망이다.
해외 무대에서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위시트 사사나티엥 감독의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태국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올해 칸영화제의 공식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다. 이에 따라 칸영화제에서 태국 영화를 구매하려는 세계 주요 배급사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방콕 데인저러스’는 지난해 토론토 영화제에서 국제 비평가상을 받은 작품으로 올 여름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태국 영화 붐은 세련된 감각과 연출력을 갖춘 젊은 감독과 제작자의 등장에 힘입은 것.태국 영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뮤직비디오나 CF 감독 출신이다.
또 태국인들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식상함과 자국내 복합상영관의 증가 등의 요인도 있다.
특히 97년 외환위기에서 비롯된 바트화 가치의 하락도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는데 한몫했다. 환율이 껑충 뛰면서 해외 투자자들이 자금을 손쉽게 회수할 수 있는 영화에 대거 몰린 것.
편집 녹음 등 아시아에서 정상급인 후반 작업 기술도 태국 영화의 저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왕자웨이 등 세계적인 유명 감독들이 태국에서 영화 후반 작업을 자주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 영화담당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태국 영화는 전통적으로 범죄영화가 강했으나 최근 코미디와 역사물를 통해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등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며 “주제면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띤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것도 태국 영화의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부산〓강수진기자>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