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파라다이스 빌라' 제한된 곳 누군가 당신을 노린다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6시 10분


「구로 아리랑」(89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92년), 「영원한 제국」(95년), 「송어」(99년) 등으로 국내외 평단과 관객의찬사를 받은 박종원 감독이 색다른 영화를 선보인다.

30일 개봉될 「파라다이스 빌라」는 서울의 한 연립주택에서 100분 동안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담은 공포영화.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택했다는 점에서는 「영원한 제국」과 많이 닮았다.

때는 2000년 6월. 서울 도심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빌라는 막 시작될 한일 축구경기의 열기로 술렁거린다.

축구광인 주인집 남자(김학철 분)는 집세를 내지 않는 대가로 옥탑방 소녀(장민아)와 관계를 치른 뒤 401호에 돌아와 TV 시청을 준비한다. 관전 도중 심장마비를일으킨 전력을 지닌 402호의 택시기사(최종원)는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택시의카라디오 앞에서 열광하고 201호에는 한떼의 친구들이 술판을 벌이며 돈내기에 빠져있다. 302호 펀드 매니저(이진우)와 301호 피아노 강사(하유미)는 불륜에 탐닉하느라 축구경기에는 아랑곳없고 101호 아줌마도 정수기 판매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한편 `스무살'이란 ID를 가진 청년(조한준)은 PC방에서 자판을 두드리다가 `비아그라'란 ID의 유저가 자신의 무기를 몽땅 해킹해갔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를 찾아나선다.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은 채 파라다이스 빌라로 숨어든 스무살은 킥 오프를알리는 TV 속 심판의 휘슬과 함께 피의 응징을 시작한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상황이 거듭되면서 희생자는 늘어만 가고 경기 종료 휘슬이 불고 나서야 사건은 종결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이 클라인병(2차원의 뫼비우스띠처럼 내면과 외면을 구분할 수 없는 3차원 공간)처럼 연결된 무대, 전-후반전과 하프타임을 합쳐 10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경기 열기의 고저에 따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긴장과 공포등은 박종원 감독 특유의 실험정신을 보여준다.

현대사회의 상징물인 컴퓨터와 몰래카메라를 사건의 도화선으로 삼은 것이라든지, 한 개인의 욕망이 광기를 부르고 욕망 과잉의 사회구조가 이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도 그동안 직설적으로나 우화적으로 사회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보여온박감독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범인의 정체를 노출시킴으로써 두뇌게임의 재미가 반감됐으며신인급의 조한준이 심리적 패닉상태에서 공포를 빚어내기에도 역부족이다. 파라다이스 빌라에 사는 인물들의 연관성도 희박해 단편영화 7편을 합쳐 보는 느낌마저 준다.

몰래카메라를 통해 피사체를 엿보는 방식의 서술구조나 등장인물간의 불연속적인 설정은 감독의 의도적인 선택으로 여겨지는데, 그 결과는 관객의 기대와 크게 거리감이 느껴진다.

지난해 10월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이 영화가 1년이 넘어 관객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도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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