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홀랜드 드라이브' 꿈인지 생시인지 '그냥 느낌으로'▼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한 마음 가짐.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껴라!’
영화는 멀리 할리웃의 불빛이 보이는 LA의 ‘멀홀랜드’로(路·드라이브)에서 발생한 사고로 시작한다. 이 사고로 기억을 잃은 흑발 미녀 ‘리타’(로라 해링)는 어느 저택에 숨어든다. 이 저택에 사는 ‘베티’(나오미 왓츠)는 할리우드 배우지망생인 금발 미녀. ‘베티’는 ‘리타’의 기억을 찾도록 도와준다. ‘리타’의 유일한 기억은 ‘다이안’이라는 이름 뿐. 여기에 할리우드의 어두운 이면을 꼬집는 에피소드가 병렬식으로 전개된다. ‘아담’이라는 감독은 생면부지의 ‘카밀라’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라는 압력을 받고, 이를 거부하자 기묘한 일들을 겪게 된다.
영화 시작후 100분까지는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약 45분간 린치는 앞의 줄거리를 완전히 뒤집고, 영화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리타와 베티를 맡은 두 여배우도 중반까지 의도적으로 평이하고 전형적인 연기를 보여주다가 후반부에서는 불뿜는 듯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속에서 ‘리타’는 ‘카밀라’로, ‘베티’는 ‘다이앤’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오랜 연인관계지만 톱스타를 꿈꾸는 카밀라는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기 위해 ‘다이앤’을 버리고 감독인 ‘아담’과 결혼하려 한다. ‘다이앤’은 ‘카밀라’를 죽여달라고 청부살인을 의뢰한다.
영화는 ‘다이앤’이 실제 인물인 ‘베티’가 할리우드에 오래 머물렀을 때의 미래의 모습일수도 있고, 반대로 ‘베티’가 실제 인물인 ‘다이앤’이 환상속에서 만들어낸 캐릭터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아무려면 어떠랴. 이 영화는 달콤하면서도 섬칫하고, 늪처럼 빨려들어가게 되는 한 편의 ‘꿈’인 것을. 꿈의 앞 뒤를 연결하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미국의 어느 평론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 누군가 별점을 주라면 ‘별 셋’을 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영화는 점점 더 강렬한 이미지로 떠오른다. 그래서 ‘별 넷’ 이상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런 매력 덕분일까. 이 영화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18세 이상.
▼'스트레이트 스토리' 지금 안가면 다신 못만날지 몰라▼
린치의 따스한 시선과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73세 할아버지의 로드 무비’. 주인공인 ‘앨빈 스트레이트’는 실존 인물이다.
지능이 떨어지는 딸과 단 둘이 오하이오의 시골 마을에 살던 앨빈은 위스컨신주에 사는 형 라일이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말을 듣는다. 앨빈 역시 두 지팡이에 의지해야 겨우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이 나쁘지만 10년간 소원한 관계였던 형과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만남과 화해를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운전을 못하는 앨빈이 선택한 교통수단은 시속 8㎞인 잔디깎는 기계. 6주간의 긴 여행을 하는 동안 앨빈은 가출한 미혼모부터 낯선 사람에게 선뜻 친절을 베푸는 평범한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족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앨빈을 연기한 리처드 판스워드는 스턴트맨으로 활약하다가 이 영화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다. 당시 79세였던 판스워드는 말기 암환자로 투병중임에도 ‘앨빈’역을 열연한 덕분에 사상 최고령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인생의 절정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것일까. 판스워드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지난해 권총 자살했다. 전체 관람가.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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