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홍은희는 경력이 짧은 데 비해 배짱이 두둑한 연기자다. 상대 역이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위인 이재룡과 정보석인데도 얼거나 주눅 드는 기색이 전혀 없다. 오히려 “후배들 연기까지 신경 써야 하는 선배들이 저보다 훨씬 힘들 거예요”라며 선배 걱정을 한다. 그녀가 ‘상도’에서 기대 이상으로 좋은 연기를 펼치는 배경에는 이러한 성격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극은 젊은 연기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장르다. 길고 깊은 호흡, 까다로운 말끝 처리, 만만치 않은 대사량에 한복 의상의 특성상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하다. 사극에서 다른 드라마에 비해 관록 있는 연기자를 선호하는 것도, 여자 연기자들의 평균 연령이 현대물보다 서너 살씩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상도’는 사극으로는 드물게 신세대 연기자들을 대거 기용했다. 홍은희 김현주 김유미 한희 등 주요 여자 연기자들이 모두 20대 초반. 이중에서도 홍은희는 ‘상도’ 제작진의 모험적 카드 중 가장 먼저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다부진 성격과 달리 그녀의 모습은 무척 가냘프다. 작은 체구에 선이 가는 외모는 언뜻 내성적인 사춘기 소녀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여린 외양과 달리 연기에 대한 지독한 욕심과 끈기를 갖고 있다.
그녀는 지난 7월 ‘상도’에 낙점받은 후 두 가지 과외를 꾸준히 받았다. 아무래도 부족한 사극 연기를 익히기 위해 선배 연기자 김을동에게 매주 대사에서, 사소한 손끝 동작에 이르기까지 연기지도를 받았고, 다른 날에는 사군자 그리는 법을 배웠다. 이 특별과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야외와 세트 촬영 쫓아다니랴, CF 찍으랴 정신없는 와중에도 한 주도 빼먹지 않았다. 남보다 조금 더 땀을 흘린 덕분에 얼마 전에는 극중 난을 그리는 장면에서 연출자 이병훈 PD에게 칭찬을 받았다. 워낙 능숙한 자세로 난을 그려 대역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는 것.
“사극 연기를 할 줄 알아야 현대물에서도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제대로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반쪽 배우’가 되기 싫다는 야무진 각오를 밝히는 홍은희. 요즘 그녀는 이런저런 고생 속에서 지난 3년간 출연했던 드라마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한다. 서울예대 방송연예과를 휴학중인 홍은희는 “사극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다음, 철없이 설치고 다니며 사고치는 발랄한 역을 하고 싶다”며 연기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다.
<주간동아 제312호/200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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