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영화전문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배우' 최민식

  • 입력 2001년 12월 12일 15시 53분


《동아일보 영화팀이 영화 전문가 3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올해의 배우’로 뽑힌 최민식(39). 많은 전문가들이 그를 꼽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최민식은 현재 영화 ‘취화선’(감독 임권택)을 촬영중이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조선시대 천재화가 장승업. 그는 요즘 촬영 때문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에 턱 수염을 하고 다닌다. 손에 붓이라도 쥐어주면 곧 화가가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최민식은 7일 영화평론가협회가 주최한 ‘영평상’에서 영화 ‘파이란’(송해성 감독)으로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시상식이 끝난 다음 뒷풀이에서 최민식은 모처럼 진하게 소주잔을 기울였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파·사·모’(‘파이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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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풀이를 하고 나서 이틀이 지났는데 아직도 술 때문에 속이 얼얼하네요. ‘취화선’의 첫 글자가 ‘취할 취(醉)’죠.(웃음) 무엇보다 배우의 입장에서 전문가들로부터 계속 좋은 평가를 받아 기쁩니다.”

1999년 ‘쉬리’로 시작해 2000년 초 ‘해피 엔드’로 이어진 ‘최민식 바람’은 거셌다.

올해는 ‘파이란’이 22만명(서울 기준)으로 선전한 편이지만 그에게는 ‘조용했던 한 해’가 아닐까. ‘파이란’을 찍는 사이 ‘공동경비구역…’ ‘친구’의 시나리오가 그를 거쳐 다른 배우의 몫이 됐다. 당시 제작사들은 ‘공동경비구역…’의 오중사(송강호)와 ‘친구’의 준석(유오성)역의 후보로 최민식을 0순위로 꼽았었다.

최민식은 지난 2년간 최고 흥행작과 ‘파이란’을 맞바꾼 셈. 작품을 고르는 그의 ‘눈’에 문제가 있었을까.

이 질문에 그는 또 웃었다.

“‘공동경비구역…’의 오중사역은 매력적이고 탐났습니다. 하지만 ‘쉬리’ 이후 또 북한군으로 출연해 고정 이미지에 갇히는 게 싫었습니다. ‘친구’는 흥행 성공이 눈에 보였지만 다른 내 몫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파이란’의 주인공 강재가 됐다. 깡패이면서 주먹도 잘 못쓰고, 사회는 물론 조직 내에서도 쓸모없는 3류 ‘양아치’였다.

‘파이란’에 얽힌 일화. 송해성 감독이 시나리오 초고를 들고 찾아왔다. 그때 최민식은 작품이 마음에 들지만 감독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최종 탈고된 시나리오를 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한 끝에 결국 ‘한 배’를 탔다. 송 감독이 서울 대일고 1년 후배라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쓰레기’같은 인간이 다른 사람(파이란·장바이즈 분)에 의해 변해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즘은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아니라고들 하죠. 그래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작품의 메시지가 뭉클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파이란’에서 최민식의 연기는 과장도 있는데 그럴수록 귀여워지는 매력이 있다”고 했고,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최민식의 강재는 ‘이보다 더 뛰어날 수 없는’ 연기였다”고 말했다.

최민식은 작품을 선택할 때 ‘배우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고민한다.

“막말로 난 ‘꼴려야’ 작품을 결정합니다. 배우는 본능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파이란’은 돈버는 영화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외면할 수 없었어요.”

‘취화선’에 출연을 결심한 것은 앞서 예술가의 길을 살았던 장승업을 통해 배우라는 ‘업(業)’에 대한 재평가를 하고 싶었고, 또 ‘거장 임권택’을 알고 싶었다고 했다.

85%가량 촬영된 ‘취화선’에서 과연 그 해답을 얻었을까.

“해답을 얻는 게 평생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내가 생각한 인간을 화면에 그리는 작업입니다. 영화는 내게 밥 먹고 ‘○싸고’ 남는 그 전부죠.”

그는 흥행에 민감하지 않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90년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쿠숑역으로 한때 ‘원빈’이었다”며 “인기와 돈이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란 것을 다행스럽게 일찍 깨달았다”고 말했다.

영평상 시상식에서 있었던 또다른 일화. 영화평론가 변인식이 최민식에 대한 시상을 자청했다. 79년 고 하길종 감독의 추모 행사에서 당시 고교생이었던 최민식이 변인식에게 “어떻게 하면 영화감독이 되느냐”고 물었던 것. 변인식은 그에게 맥주를 따라주면서 “학교 공부도, 인생 공부도 많이 하라”고 말했다.

“시상식장에서 변 선생님을 만나니 가슴이 찡하더군요. 당시 저는 감독이 꿈이었지요. 하지만 대학 1학년 때 첫 연극무대에 출연하면서 연기에 빠져 감독이 아닌 배우가 됐습니다. 올해는 ‘취화선’ 때문에 못했지만 내년에는 꼭 1년에 한번 연극을 한다는 약속을 지킬 겁니다.” 99년 결혼 뒤 아이가 아직 없다. “영화도 제작 기간이 길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 부부의 제작 기간도 길어야 좋은 ‘작품’이 나올 겁니다. 그래서 좀….”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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