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죄와 벌', 증오…살인…파멸… 벌레같은 인간들

  • 입력 2001년 12월 20일 17시 56분


영화 ‘죄와 벌’은 핀란드의 아키 카우리스메키 감독(44)의 데뷔작(1983년)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원작을 어둡고 음울한 세기말적 감성으로 풀어 헤친다. 카우리스메키 감독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1993년)로 세계 영화계에서 톡특한 철학과 영화적 감성을 인정받은 감독이다.

이 영화가 나온지 18년 지나 한국에서 개봉되는 것은 그만큼 흥행 여부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인류를 구원하도록 선택된 인간은 추악한 인간을 죽여도 된다”며 고리대금업자 할머니를 죽인 법대생은 이 영화에서 도살장 직원 라이 카이넨으로 바뀌었다. 카이넨은 약혼녀를 죽이고 뺑소니친 지역 유력 인사를 총으로 살해한다.

이 영화에서 살인의 사회적 의미는 희석됐으나 개인적인 살해 동기는 원작보다 배가됐다. 그래서 그는 영화 속에서 “너(지역 유력 인사)는 벌레같은 인간”이라고 계속 뇌까린다.

하지만 “그 놈은 벌레일 뿐”이라던 카이넨은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엉뚱한 사람이 걸려들어 살인 혐의를 뒤짚어 쓰게 되자, 스스로가 ‘벌레’로 퇴화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 경찰에 자수한다.

카우리스메키 감독은 시종 건조한 화면과 무미건조한 카메라 워크로 카이넨의 내면 갈등을 그려냈다.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잿빛 하늘도 영화의 메시지를 뒷받침해준다. 18세 이상 관람가. 29일 개봉.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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