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드라마속 386 남성들 "어머니-아내가 무서워요"

  • 입력 2002년 1월 20일 17시 23분


드라마를 통해본 386 세대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198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청년 시절을 보낸 이들은 하나의 ‘이념’세대. 그러나 이들은 이념이 사라진 90년대를 지내오면서 당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방송가 여러 드라마들은 바로 그러한 386의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386들은 어떻게 묘사되나▼

KBS1 ‘사랑은 이런거야’에서 가부장적 집안의 장남인 차상범(홍학표)은 직장의 감원 바람에 전업 주부로 나선다. 그는 요리학원을 다니며 요리 경연대회에 나갈 꿈을 꾸는 등 살림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집안의 기대 때문에 새 직장을 알아 보고 있으나 다시 일을 시작할 마음은 없다.

MBC ‘여우와 솜사탕’의 봉강철(유준상)은 철없는 허풍장이다. 그는 어머니를 졸라 막무가내로 5000만원을 빌린 뒤 주식에 투자한다. 회사에서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주식값의 등락을 점검하고 이에 따라 하루 기분이 좌지우지된다. 얼마전 주식 값이 폭락해 큰 손해를 본 그는 부모에게 불려가 호된 꾸지람을 듣는다.

▼여성에 고개숙이는 386▼

SBS ‘이 부부가 사는 법’의 기선우(김규철)는 직장 상사인 아내한테 기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산다. 우연히 알게 된 동사무소 여직원과 신세 한탄을 나누다 친해진 이들은 몰래데이트를 즐긴다.

극중 30대 남성의 특징 중 하나는 상대 여성이 사회적으로 높거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여우와 …’에서는 유준상이 평범한 회사원인데 안선녀(소유진)은 당찬 한의대생이고 ‘이 부부가…’의 박영자(송채환)는 남편의 직장 상사다. ‘사랑은 …’에서 전업 주부로 나선 차상범의 아내 안도해(김성령)는 프리랜서 분장사로 살림을 남편에게 떠맡기고 지방 출장에다 밤샘도 불사한다.

30대 남성의 변화가 50대 남성의 추락과 다른 점은 곁에 설움을 달래줄만한 순종적인 아내가 없다는 점이다. ‘사랑은…’에서 안도해는 시집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말해 남편을 난감하게 만들고 ‘여우와…’의 안선녀는 결혼을 앞둔 남성에게 “똑바로 해” “존경받고 싶으면 존경받을만한 행동을 하라”며 매사에 선도부장같다.

▼낀 세대의 설움▼

80년대 민주화와 개혁 의지를 발산했던 386들은 실 생활에서는 전통과 변화, 위와 아래, 부모와 아내 사이에서 ‘꽉’ 낀 샌드위치 세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드라마속 가족 관계에서도 386 남성들은 부모에 대해 전통적 효도를 강조하나 아내들은 매사 합리적으로 하자고 따진다.

‘여우와…’의 봉강철은 상사에게 수시로 질책받고 아래로는 평소 절친한 후배가 상사로 스카우트되는 등 수난을 겪는다. 집에서도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는 얼굴도 제대로 못들고 여자 친구한테도 쩔쩔 맨다.

‘사랑은…’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안도해는 “분가하고 싶다”며 합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지지만 장남인 남편은 부모에 대한 책임 때문에 늘 미안해한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는 “386 세대는 고민해 볼 틈도 없이 급격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왔다”며 “80년대 당시 사회 상황은 이들로 하여금 한가지 명분에 매달리게 했으나 90년대 이후 명분이 사라진 삶의 현장에서 이들은 새로운 탈출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경 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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