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수경/SBS의 오만

  • 입력 2002년 2월 8일 18시 14분


무책임한 방송이 이어져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MBC의 ‘!느낌표’가 야생 너구리 생포장면을 연출해 파문을 일으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SBS의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자작극 ‘귀신소동’을 검증 없이 방송,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귀신소동’이 방송된 뒤 SBS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4000여건에 달하는 항의성 글이 올라왔다.

시청자들은 이 프로의 허점을 논리정연하게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화분이 저절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작극의 주인공인 김모군의 오른쪽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두 발이 먼저 움직이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몸이 흔들렸다는 등의 주장들이었다.

3일에는 이 사건이 자작극이었음을 밝히는 한 지방신문의 기사를 한 시청자가 재빠르게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제작진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도 전에 이미 시청자들이 조작사실을 파헤친 셈이다.

이처럼 제작진이 조작의혹에 대한 검증에 나서기도 전에 상황이 이미 ‘종료’됐는데도 SBS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7일 방송에서도 주인공들이 자작극을 벌였다고 인정했다는 사실과 사건의 정황만 설명했을 뿐 시청자를 현혹한 데 대해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담당 최낙현 PD는 “7일 방송을 조작의혹이 제기되기 전 제작을 끝내 검토하지 않고 방송을 내보냈다는 비판에 대해 사과문을 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청자 게시판에 “SBS는 각성하라” 등의 항의성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왜 이처럼 무책임한 제작 관행이 이어지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방송 종사자들이 중요한 사실을 한가지 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방송도 일종의 서비스업인데 수요자 즉, 시청자의 수준을 너무 낮게 설정하고 있어요. 방송 제작자처럼 수요자를 우습게 아는 공급자도 아마 없을 겁니다. 결국 시청자들이 나서서 잘못된 방송 프로그램을 추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김수경 문화부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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