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특수’ 때문이죠. 입이 함박만 해진 영화사는 역시 ‘반지의 제왕’의 수입삽니다. ‘반지의 제왕’이 무려 13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니까요. 이 영화는 거의 끝물이라 상영관이 10개(서울)로 줄어든 상태였는데요, ‘아카데미 특수’를 겨냥해 이번 주말부터 상영관을 두 배로 늘리고 대대적인 광고도 내보낼 계획이라는군요. (뻔하겠죠? 오스카상 13개가 주르르 서 있는 거. ^^) 수입사측은 뜻밖의 호재로 20만∼30만명은 더 들 것으로 보고 있더군요.
22일 개봉하는 ‘뷰티풀 마인드’와 다음달 1일 개봉하는 ‘알리’는 처음부터 아카데미상을 염두에 두고 개봉 날짜를 잡은 경우죠. 영화사는 아카데미 시상식(다음달 24일)까지 느긋하게 ‘특수’를 누리다가 수상 소식이 들리면 1, 2주 연장 상영할 예정입니다. 이 밖에 ‘고스포드 파크’(작품상, 감독상 등 후보)와 ‘노 맨스 랜드’(최우수 외국어영화 후보)의 수입사들도 “개봉하기 전에 공짜로 영화 홍보했다”고 좋아하더군요.
아카데미상은 종종 ‘죽은’ 영화를 살려내기도 합니다. 이미 상영이 끝난 영화가 반짝 재개봉하는 거죠. 올해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물랑루즈’도 지난해 10월 개봉됐지만 배급사인 20세기 폭스 측은 재개봉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최우수 외국어 영화 후보에 오른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도 지난해 상영이 끝나 이미 프린트들을 폐기 처분한 상태인데요, 수입사측은 아카데미 수상에 대비해 재개봉용으로 프린트 5벌을 아직 보관하고 있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새삼 할리우드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할리우드만의 잔치인 아카데미상이 각국 극장가에 미치는 영향은 3대 국제 영화제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크니까요. ‘아카데미 효과’는 있어도 ‘칸 효과’나 ‘베니스 효과’는 점점 줄어들어 거의 유명무실한 지경이죠. 지난해 개봉됐던 ‘아들의 방’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후광’에도 불구하고 겨우 3만여명(서울)만 봤지요. 한국 영화 ‘꽃섬’과 ‘나비’도 각각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및 몬트리올 영화제 수상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등에 업고 개봉했지만, 역시 5000여명(서울)이라는 초라한 결과를 얻었죠.
영화인들은 ‘상품’과 ‘작품’의 거리가 자꾸만 멀어진다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상품’도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국제 영화제를 겨냥한 예술 작품도 좋지만 제대로 된 ‘상품’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 후보에라도 올랐으면 합니다. (윽, 돌 날아오기 전에 도망가야지. 후다닥∼)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