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 ‘피도 눈물도 없이’(3월1일 개봉·18세 이상 관람가)로 1년 3개월만에 복귀한 ‘충무로의 젊은 피’ 류승완 감독(29). 전작인 단편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 리’의 비릿내 가득한 코드를 35억원짜리 영화에서도 살려내며 열혈 마니아층에 호응할 태세다. 제 자신을 알리는 수단으로서의 유혈낭자한 폭력, 곳곳에 끼어드는 조롱과 유머, 결국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다는 허무주의까지….
투견장 판돈이 담긴 가방을 둘러싸고 벌이는 삼류 인생들의 악다구니에 류 감독은 “인간들이 어디까지 지독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왜 이렇게 쓰레기 인생과 그들이 사는 방식에 매달리나?
“내가 그렇게 어렵게 살아와서 그런가. 집착이라기보다는 애착같은 거다.”
-전도연(수진)과 이혜영(경선)이라는 두 여배우를 투톱으로 내세웠지만 워낙 영화가 피 튀기다보니 결국 마초들의 이야기로 모아진 듯 하다.
“여자들을 부각시키려면 상대방 남자들, 특히 수진의 애인인 독불(정재영)의 캐릭터를 보다 강력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한국 영화에서 여배우들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전투적’으로 그려진 적은 거의 없을 거다. 그러다보니 액션 신도 많아졌고 여배우들이 따라가기 힘든 점이 적지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스타일을 추구해 왔다지만 ‘피도…’는 ‘이미지 과잉’이라는 말도 있다. 이제는 장편 영화 감독인데.
“누가 영화를 보고 ‘사방으로 튀는 지랄탄’이라고 하더라. 맞는 말이다. 메시지에는 집착하지않는다. 스며들면 그만이지.”
-투견장, 도박판, 돈가방 쟁탈전 등 영화의 소재가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그런 지적에 머리 터지는 줄 알았다.”
표절 시비(?)와 관련해 류 감독이 소개한 일화 한 토막. 지난해 초 ‘피도…’의 시나리오를 쓰고있는데 한 영화사 간부가 “너 큰일 났다”며 멕시코 영화 ‘아모레스 페로스’(지난해 개봉)를 보라고 했다.
개같은 사랑이라는 뜻의 이 영화의 주무대는 투견장. 몇 개월 뒤 이번에는 ‘영국의 쿠엔틴 타란티노’로 불리는 가이 리치의 ‘스내치’. 브래드 피트 주연의 이 영화는 불법 권투 도박장을 배경으로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한바탕 소동을 그렸다.
그 때까지 영화 제목은 ‘스내치’(snatch)와 같은 ‘강탈자’였다.”
영화 제목은 그렇게 ‘피도…’로 바뀌었다.
-그럼 그런 영화들과 무관하다는 건가. 류감독은 스스로도 수많은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온다고 했다.
“가이 리치가 올해 34세다. 엇비슷한 세대에 보고 영향받은 영화가 비슷한 것 아닐까. 사실 영화라는 게 동시대의 코드를 담아내는 작업이다.”
-다음에도 ‘밑바닥 인생’인가.
“선과 악이 분명한 좀 경쾌한 영화로 이제까지와는 선을 그으려한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밑바닥 코드’를 주위 환경과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니아들이 ‘돈 맛 보더니 변절했다’고 하지않을까.
“어쩌겠냐. 그런데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내가 권투 신인왕 전을 자주 보는데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은 “맞는 것을 두려워하면 때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서서히 맷집을 키우려 한다.”
-요즘은 동생(SBS ‘화려한 시절’에 출연 중인 류승범. ‘피도…’에도 조연으로 출연했다)이 더 유명하다.
“예전에는 그냥 한번 까불다 말겠거니 했는데 요즘 보니 정말 연기에 소질에 있다. 그런데 얼마 집 근처(서울 신당동)를 지나는데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류승범씨 형님이시죠’하더라, 참.”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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