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디지털위성방송

  • 입력 2002년 2월 28일 18시 18분


2010년 순돌이네 집. 휴일인데도 가족들이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중계를 보기 위해서다. TV를 보다 야구 모자가 마음에 든 순돌이는 아빠에게 모자를 사달라고 조른다. 화면에서 선수들의 모자 부분을 리모컨으로 클릭하자 모자의 가격과 사이즈 등 상세한 정보가 나오고 순서대로 선택해 구매를 마쳤다. 오후 늦게 다시 TV를 켠다. 주문형 비디오(VOD)를 보기 위해서다. 10년 전 영화 ‘타이타닉’을 고른 뒤 버튼을 누르자 바로 영화가 시작된다. 밤늦게 순돌이가 갑자기 끙끙 앓는다. TV스위치를 눌러 원격진료 시스템에 접속하니 담당의사가 친절하게 대처 요령을 일러준다. 디지털 위성TV가 바꿔놓을 미래 생활의 모습이다.

▷우리도 디지털위성방송이 1일 출범했다. 그동안 위성방송을 둘러싸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터라 이 같은 ‘장밋빛 미래’가 별로 실감이 나지 않지만 방송 역사에 획기적인 일임에는 틀림없다. 채널이 140여개나 된다고 하고 음질 화질이 기존 TV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고 한다. 하지만 자꾸 케이블TV의 실패 사례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두 방송의 탄생 과정은 ‘닮은꼴’이다. 케이블TV는 케이블망도 제대로 안 깔고 방송을 시작했고 위성방송도 달랑 6500대의 수신장치만 갖고 출범하게 된다. 둘 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영업부터 시작한 것이다.

▷또 하나 공통점은 시작 전부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져 여러 기업들이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몰려들었으며 정부도 이를 부추긴 점이다. 95년 출범한 케이블TV는 초기 참여업체들이 누적되는 적자로 2, 3년을 넘기지 못하고 거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야말로 참담한 실패였다. 지금도 케이블방송은 시청자들에게 “볼 만한 프로가 없다”는 핀잔을 들으며 힘겹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위성방송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위성방송이 성공하는 길은 역시 양질의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프로가 없는데 시청자가 선택할 이유는 없다. 만약 국내에서 위성방송이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업자들의 존망에 그치지 않는다. 위성방송은 영상 등 문화산업과 직결되어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 국민의 ‘삶의 질’과도 관련되어 있다. 세계는 정보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 그 중 한 축이 될 위성방송의 성패는 그래서 국가적인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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