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스, 정류장’은 이처럼 흔치 않은 두 인간이 서로의 접점을 찾아가는 영화다. 충무로의 여걸, ‘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대학 단짝인 이미연 감독의 데뷔작.
보습학원 국어 강사인 재섭(김태우)은 대학 시절 문학 청년의 꿈을 접은 채 ‘돌머리’들을 가르치는 데 넌덜머리가 난 서른두 살. 친구들의 연락이 싫어 삐삐를 아직까지 차고 다니고, 약속도 없으면서 늘 “바쁘다”며 학원 동료 교사들의 회식 제의를 물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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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김민정)는 간섭받는 것이 싫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열일곱살 소녀. 그러나 뇌물 먹는 공무원 아빠에다 수영 강사와 바람난 엄마가 있는 집이 싫어 원조 교제도 서슴지 않는다.
사회적 ‘다수’로부터 떼밀린 듯한 이들 캐릭터의 만남은 역시 평범하지 않다. 재섭은 먹을 것 사달라고 조르는 여학생과 달리, “제가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라며 떡볶이 집으로 데려가는 소희에게 애정을 느낀다.
서로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둘의 공간은 움직이는 버스와 하염없이 서서 기다리는 정류장으로 집중된다.
영화의 공간이 어두컴컴한 술집과 가로등빛이 흔들리는 공원 등 철저히 어둡고 음습한 곳으로 제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은 두 사람의 소통보다 이들이 마이너리티라는 점에 더 무게중심을 두면서, 90년대 중반 서구 대중문화계를 휩쓸었던 ‘루저(loser·낙오자)’ 코드에 빠지곤 한다.
루저 코드의 핵심은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이들의 일탈과 열악한 사회환경의 개선에 대한 냉소주의. 영화 속 재섭과 소희는 객관적으로는 그리 낙오자들이 아닌데도, 이미연 감독은 이들을 ‘일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한 뒤 지나치게 쓸쓸하고 어두운 감성을 길어올리려 한다. 한 명은 떠나고 또 한 명은 머문다는, 그래서 이들이 소통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제목의 뉘앙스도 영화 중간중간 묻혀 버린다.
이런 이유로 다분히 판타지적 요소를 안고 있는 이 영화가 지극히 현실적인 카메라 앵글만을 고집한 것이 부담스럽다. 재섭이 원조교제 끝에 소희가 임신중절한 것을 알고 대성통곡을 하는 마지막 장면은 클라이막스인데도 그 울림이 반감된다.
하지만 영화 내내 차갑고 절제된 시선을 유지하려는 감독의 의지 덕에 “이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만나겠구나”라는 결말을 예견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지극히 모던하면서도 울컥 치밀어오르게 하는 루시드 폴의 음악은 영화의 컨셉트와 잘 들어맞는다. 평소 혀짧은 발음으로 고생했던 김태우는 “내 모습을 그냥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15세 이상. 8일 개봉.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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