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정글쥬스' 생각없는 건달들의 좌충우돌

  • 입력 2002년 3월 18일 18시 39분


‘주유소 습격사건’(1999년) 이후 한국 ‘건달’(또는 양아치) 영화의 뚜렷한 경향 중 하나는 ‘생각 없음’일 것이다. ‘주유소…’에선 소일 거리를 찾던 건달들에게 주유소를 습격하게 된 이유를 묻자 “그냥!”이라고 한다. 장혁 이범수 주연의 영화 ‘정글 쥬스’도 이렇게 사회적 주변인들의 아무 생각없는 일탈의 연속이다.

이들의 ‘행각’은 최근 한국 영화의 어떤 캐릭터보다 한심스럽다. 서울 청량리 일대의 사창가 ‘588’에서 빈둥거리는 ‘양아치’ 기태(장혁)와 철수(이범수)는 어느날 조폭의 중간 보스 민철(손창민) 밑으로 들어간다. 그러던 중 어느날 조직의 마약인 ‘정글 쥬스’를 손에 넣게 되고, 이를 팔기 위해 ‘588’ 매춘부와 함께 부산으로 떠난다.

언뜻 ‘버디 영화’의 전형처럼 보이는 ‘정글 쥬스’는, 하지만 마약을 팔겠다는 목표보다 그 과정에 지나치게 매몰되면서 방향타가 흔들린다. 장혁이 포르노에서나 볼 법한 체위로 찍은 섹스신이나 말 안듣는 조직원을 길들이기 위해 골프채로 코를 후려치는 장면 등은 양념이라기 보다 눈에 거슬리는 액세서리다. 이렇게 ‘정글 쥬스’는 “우리는 왜 양아치일까”로 머리를 쥐어 뜯기보다 “그래 우리 생 양아치다, 어쩔래?”에 가까운 영화다. ‘태양은 없다’에서 ‘양아치’로 나온 이정재는 “젠장, 나는 왜 안될까”하며 벽에 머리를 박지만, 장혁과 이범수는 마약을 팔다가 갑자기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를 보겠다고 맨 몸으로 대한해협을 건너겠다고 맘 먹는 인간들이다. 사회 부적응자들의 ‘귀여운’ 일탈로 갈 수 있었던 이 영화가 막판에 거북하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 생각 없음에 따른 양아치 이미지의 과잉 탓이다.

‘개같은 날의 오후’에서 각본과 조감독을 맡았던 조민호 감독의 데뷔작. 18세 이상 관람가. 22일 개봉.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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