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노트]'전국 노래자랑' 못 불러도 웃기면 예선 통과

  • 입력 2002년 3월 19일 17시 35분


1980년 11월 시작된 KBS1 ‘전국 노래자랑’은 올해로 22년째 계속되고 있다.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오락프로의 틈바구니 속에서 용케 버텨낸 셈이다.

그러나 22년의 세월 동안 꾸준한 시청률을 확보해 온 것을 보면 TV의 시청자층이 다양하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인 것 같다. ‘전국 노래자랑’의 진풍경은 본선보다 예선에서 펼쳐진다. 제작진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맨정신에 노래하기가 쑥스럽다며 술을 마시고 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취기 때문인지 무척이나 흥겹게 무대를 연출한다.

본선에 진출시키면 실제 녹화 때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겠다 싶어 뽑아놓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맨정신으로 무대에 올라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쭈볏거리다 내려가기 일쑤다.

예선에서 탈락한 지원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주위에 있는 물건을 닥치는대로 던지며 화를 내는 협박형. 울면서 한번만 다시 부르게 해달라고 조르는 애원형.

마지막으로 제작진에게 드링크제를 돌리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는 뇌물형. 그만큼 아직도 TV에 나와보는게 소원인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예선에서는 무조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 잘 노는 사람, 노래를 못불러도 잘 웃기는 사람 등 몇 개의 범주로 나눠서 본선 진출자를 결정한다. 심지어는 ‘땡’을 쳤을 때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될만한 사람을 미리 지정해놓기도 한다.

‘땡’에 얽힌 황당한 사연 한가지.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예선에서 노래를 부르던 한 70대 할아버지가 ‘땡’ 소리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예선에서는 ‘땡’ 대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로 탈락을 통보한다.

요즘 제작진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노래방 기계 덕분인지 마음껏 ‘땡’을 쳐도 좋을만큼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제는 춤이나 무대매너 등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우리민족은 가무에 능한 민족이라고 했던가. 출연자들끼리의 춤 대결 역시 막상막하의 수준이다. 그래서 제작진들의 고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채형석 KBS1 ‘전국 노래자랑’ 담당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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