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박찬욱-송강호 콤비 "솔직히 우리도 두려웠다"

  • 입력 2002년 3월 24일 17시 57분


“깡다구는 알아줘야한다”(영화감독 L씨)

“용감하다”(이주영씨·여·27)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로 서울 관객 250만명을 모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복수는 나의 것’의 시사회장에서 나온 반응이다.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을 담아낸 유머는 간데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극에 휘말린 인간의 깊은 속내를 고강도 폭력과 핏빛 가득한 화면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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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스로 ‘본격적 의미의 국내 첫 하드 보일드’(Hard Boiled)로 규정했듯 영화는 절제된 대사와 배우들의 표정, ‘상징’화된 소품들로 채워져 최근 한국 영화 중 가장 극단적이고 이례적인 형식의 영화로 꼽힐 만하다. 박 감독(이하 박)과 다섯 차례의 고사 끝에 합류한 주연 송강호(이하 송)에게 듣는 ‘복수는 나의 것’.

-‘용감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용감? 이전에 없던 장르를 만든 데 대한 생경함같은 것 아닐까. 나는 그저 2002년도에 걸맞는 정서와 코드를 극단적인 폭력으로 내놨을 뿐이다.”(박)

“시나리오를 처음봤을 때 나도 두려웠는데 관객은 오죽할까.”(송)

-주연 동진(송강호) 류(신하균) 영미(배두나)는 살인을 하나 결코 악인으로 비치지 않는다. 그러면 이들의 살인 행각은 무슨 뜻인가?

“절망 속의 몸부림, 고민하고 주저하다가 복수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공감 정도?”(박)

“그렇게 복잡한 것이었나. 그저 평범한 인간들의 ‘저항’인 줄 알았다.”(송)

“물론 평범하지. 하지만 없는 사람의 사연이 더 복잡한 법.”(박)

-폭력으로 점철된 화면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많은 관객들이 동진이 류의 아킬레스 건을 칼로 자르는 장면에서 제대로 눈을 못 뜨더라.

“관객이 2시간 내내 긴장하고 극장을 나와서도 망막에 화면이 남아있길 바랬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관객을 극한까지 몰아가는, 일종의 극단적 영화보기 체험의 장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박)

박감독은 류가 자신을 속인 장기밀매단원의 목에 송곳을 꽂는 장면에선 바이올린에 해금까지 동원해 기괴한 음향 효과를 극대화했다.

-3명의 사회적 계층을 영화 초반부터 부각시키면서 정치 이데올로기를 짙게 밑바닥에 깔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부인하지 않겠다. 고졸 출신이면서 자수성가한 동진은 프티 부르주아, 공장노동자이면서 신부전증을 앓는 누나의 치료비 1000만원에 목숨건 류는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 길거리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영미는 극단적 무정부주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들 중 어느 계층에도 치우치지 않았다는 거다. 영화는 모두에게 복수를 허락(?)했고 결국 모두 죽었다.”

-그래도 특별히 애책을 느낀 캐릭터가 있을 법한데.

“동진을 딸의 복수에만 매몰된 인간으로 그렸다면 영미를 죽일 때 굳이 전기고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기고문이 스위치만 돌리면 된다. 일종의 간접 살인으로 그에게 면죄부 비슷한 걸 준 것이다.”(박)

-오랜만에 강렬하면서도 복잡한 영화가 나왔다는 평이다. 그런데 문제는 관객의 반응이 아닐까?

“지난해 조폭 영화가 판친 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관객의 수준을 낮춰 보면 안된다. 영화계가 알아서 눈높이를 낮추면 관객도 눈치챈다.(박)

“그래도 망하면 안된다. 난 ‘초록물고기’(1997년) 이후 망한 영화 없었다.(웃음)”(송)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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