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 블랙박스]스타캐스팅 '삼고초려'

  • 입력 2002년 4월 1일 17시 29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새로운 드라마가 기획되고 캐스팅이 진행되면 연출을 맡은 PD는 자기 작품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연기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해당 연기자나 매니저가 방송국으로 들어와서 출연 여부를 결정하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방송국에 앉아서 캐스팅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위 스타급 연기자를 드라마에 출연시키기 위해 담당PD 나 혹은 부장급 책임 PD들이 직접 스타의 소속사 사무실로 찾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모 방송국에서는 아예 ‘캐스팅 진행비’ 라는 것이 있어서 PD가 스타와 매니저들에게 밥을 사고 술을 먹여가며 작품에 출연해달라고 로비(?)를 하고 있다. 과거 ‘PD사건’이라고 해서 일부PD가 신인 연기자나 가수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고 출연시킨 사실이 적발되거나 혹은 받기만 해놓고 출연은 시켜주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매니저가 PD에게 술만 얻어먹고 스타를 출연시켜주지 않아 PD에게 원성을 사거나 신인 PD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이 가끔 있으니 격세지감에 한숨을 내쉬는 PD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이 때문에 방송국에서는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스타를 많이 캐스팅 할 수 있는 PD에게 주요 드라마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

캐스팅 전쟁을 치르다보면 숱한 뒷얘기들이 나오게 되는데 그 드라마의 성공 여부에 따라 스타들에게도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된다.

드라마 ‘질투’, ‘국희’ 등 만드는 작품마다 빅 히트를 기록했던 이승렬 PD의 새 드라마 ‘선물’이나 무조건적 성공이 보장됐던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의 새 주말극 ‘내 사랑 누굴까’에 출연하고 있는 연기자들은 당연히 인기몰이를 할 줄 알았지만 좀처럼 시청률이 오르지 않아 당황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팀은 여주인공으로 원래는 김희선을 생각했다. PD와 작가가 드라마 ‘미스터Q’와 ‘토마토’에서 김희선과 함께 일하며 여러 차례 대박의 기쁨을 맛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작품을 같이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여주인공 역도 거절했던 김희선은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있어 좀처럼 드라마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신선한 이미지의 손예진을 떠올렸지만 영화 ‘연애소설’을 차태현과 함께 촬영하고 있어서 스케줄이 맞질 않았다. 이후 여러 연기자들을 만나보고 고민을 거듭하던 제작팀은 급기야 방송 2주 전까지 캐스팅이 안 돼 촬영에 못 들어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으로 내정했던 고수마저 캐스팅에 실패하자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급해진 제작팀은 문득 청소년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장나라를 떠올렸다. 그가 비록 가수이긴 하지만 시트콤에도 출연하고 있는데다 유명한 연극배우인 아버지 주호성씨가 책임지고 그에게 연기 연습을 시켜줄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제작진은 그녀를 설득해서 캐스팅에 성공했고 결국 새로운 주연 배우를 탄생시켰다.

귀여운 이미지의 장나라가 사투리를 써가며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으니 그의 캐스팅은 대단히 성공적인 게 됐다. 이는 과감한 승부수가 대박을 터트린 경우다. 지나치게 스타에만 의존하고 있는 드라마 캐스팅에 이제는 변화를 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김영찬 시나리오 작가 nkja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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