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배틀 로얄', 네가 살려면 친구를 죽여라

  • 입력 2002년 4월 1일 17시 36분


‘배틀 로얄’은 누구도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 잔혹한 게임같은 영화다. 하지만 힐끗 눈길을 준다면? 영화는 더 이상 시선을 떼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이 작품은 마치 게임을 시작하려면 ‘매뉴얼’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의 가정에서 시작된다.

가까운 미래의 일본. 실업자 1000만명, 등교 거부 학생 80만명. 마침내 교내 폭력으로 희생된 순직 교사가 1200여명에 이르자 정부는 전대미문의 배틀 로얄법, 이른바 ‘BR법’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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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은 전국에서 1년에 한 학급을 무작위로 뽑아 무인도에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 설정은 황당하다. 그러나 “과연 내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가”라고 한번쯤 고민한 사람이라면 그 과장 속에 담긴 리얼리티를 거부하기 어렵다.

영화가 제시하는 게임의 구체적인 규칙은 이렇다. 반경 10㎞의 무인도에서 제한 시간은 3일.

제한시간이 끝난 뒤 단 1명만 살아남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학생들의 목에 부착된 목걸이는 억지로 풀면 폭발하고 참가자에게는 기관총 단검 석궁 등 무기 1개씩이 지급된다.

이 작품은 한반 급우 40명과 게임의 변수를 위해 끼워놓은 2명의 학생 등 42명이 극한 상황에서 벌이는 처절한 생존게임을 담았다. 학생들이 처음 게임을 거부하면서도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하는’ 상황에 익숙해지는 모습이 오싹하다.

담임 선생 기타노(기타노 다케시)를 테러하는 등 문제아가 많은 중학 3학년의 한반 학생들이 수학여행 길에서 가스에 의해 정신을 잃은 채 무인도로 옮겨진다.

테러 사건으로 학교를 떠난 기타노가 BR법을 설명하자 웃기는 소리라며 비웃는다. 하지만 기타노가 떠든다는 이유만으로 한 여학생의 머리에 칼을 꽂자 학생들은 끔찍한 살인극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의 잔혹한 화면 아래에는 거꾸로 지울 수 없는 우정과 희망, 인간다운 것에 대한 절박함이 강하게 흐르고 있다.

급우들의 싸움을 중지시키려고 애쓰는 나나하라 슈야(후지와라 타츠야)와 그를 좋아하는 여학생 나카가와 노리코(마에다 아키)는 희망을 위한 상징적 존재들이다. 두사람은 이전 게임에서 애인을 죽이고 최후의 생존자가 됐던 카와다 쇼고(야마모토 타로)에게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준다.

이 황당할 수도 있는 스토리에 공포와 리얼리티를 함께 불어넣는 것은 기타노 다케시의 탁월한 연기력이다. 기타노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제자를 죽이는 냉혈한이자 가정 속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실패한 어른’의 양면성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일본 문학상 심사에서 ‘대단히 혐오스럽다’는 평가를 받다 1999년 출간된 다카미 코순의 소설이 원작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고희를 넘긴 후카사쿠 긴지 감독(72)의 60번째 연출작이라는 점이다.

후카사쿠 감독은 보기 드물게 충격적인 영상 언어를 통해 기타노로 상징되는 권력과 기성 세대를 매섭게 질타했다. 18세 이상 관람가. 5일 개봉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이 대사!▼

#영화 후기 형식으로 보여주는 ‘레퀴엠 3’에서 나카가와와 기타노 선생의 대화.

나카가와: 한가지 알려드릴까요. 선생님을 찌른 칼 말인데요. 실은 제가 보관하고 있어요. …. 비밀이예요. 두사람만의….

기타노: 나카가와!

나카가와: 네?

기타노: 이제 어른들이 어떡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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