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침입한 괴한들과 맞서는 모녀를 그린 이 스릴러 영화의 이 같은 초반 성공은 9·11 테러 이후 가정의 안전을 소망하는 미국인들의 바램이 반영된 것인지 모른다.
#딸을 지키는 어머니역
딸을 지키는 어머니 역을 맡은 사람은 ‘피고인’(1988)과 ‘양들의 침묵’(1991)으로 두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명문 예일대 출신의 지성파 여배우 조디 포스터(40). ‘애나 앤드 킹’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녀가 3일 오후 일본 도쿄의 임페리얼 호텔 인터뷰룸에 들어섰다. 두 번째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총명한 여대생 같은 모습이었다.
-녹음해도 돼나요?
“마음대로 하세요. 이게 녹음긴가요? 이렇게 작은 녹음긴 처음 봐요.”
녹음이 어려울 것이라던 영화사측 관계자의 말과는 달리 앞에 놓인 디지털 녹음기를 보자 신기한 듯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는 이 영화로 ‘양들의 침묵’(1991)의 스탈링 역 등을 통해 보여준 지적이고 얼음장같은 이미지를 떨쳐내면서 모성애를 자극하는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지난해 9월 둘째 아들 키트를 낳으면서 촬영한 ‘패닉 룸’에서 조디 포스터는 뉴욕 맨해튼 고급 주택으로 이사 간 첫날 집에 침입한 강도들로부터 몸이 약한 딸을 지켜내는 이혼녀 멕 알트먼을 연기했다.
#우리집엔 ‘패닉룸’ 없어요
-임신한 상태에서, 그것도 액션이 곁들여진 영화를 촬영해 의외였습니다.
“임신은 장애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니 불평할 것 없어요. 물론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5개월 반에 걸친 촬영은 힘들었지요. 촬영 틈틈이 잠도 자고, 가슴이 부풀어올라서 후반부에서는 스웨터를 걸치기도 했어요.”
-‘패닉 룸’이 뭔가요? 그리고 실제로 당신 집에도 그런 게 있습니까?
“패닉 룸이란 본래 중세에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전망 좋은 방을 지칭했지만 최근 들어 방공호나 은신처를 뜻하는 용어가 됐어요. 제 집에는 없지만 미국에서는 실제로 집안에 패닉 룸을 설치하는 경향이 있어요. 범죄자가 침입했을 때 처음 30분만 버티면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니 쓸모는 있는 셈이지요.”
-니콜 키드먼이 촬영중에 부상을 당해서 ‘대타’로 기용됐다는 말도 있던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한 번 같이 일해 보고 싶은 감독이었어요. 그래서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그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지요.”
포스터는 패닉 룸의 문이 닫히기 직전 딸에게 약봉지를 던져주는 장면에서 무려 107번이나 촬영을 반복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폭력은 또다른 폭력 낳을뿐
-영화에서 이들 모녀가 괴한들의 위협에 패닉 룸에 갇혀 있지만, 괴한들은 돈의 욕망에 쫓겨 법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패닉 룸 밖에 갇혀 있습니다. 이 상황을 관객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폭력에 대해 또 다른 폭력으로 맞선다면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에요. 때문에 폭력은 미리 막아야 하는 것이지요. 영화의 메시지는 그런 상황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고, 9·11 테러 이후 관객들에게 심어진 경각심을 자극했다면 이 영화의 방향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봐야할 거예요.”
-지난해 ‘양들의 침묵’ 후편인 ‘한니발’에 출연하지 않은 것을 놓고 말이 많았습니다.
“‘양들의 침묵’은 남을 구하는 것을 숙명으로 아는 FBI 여자 수사관 역이었지만 ‘한니발’은 렉터 박사가 진행한 엽기의 향연이었어요. 게다가 저는 이미 그때 다른 영화를 하기로 계약을 한 상태였지요.”
아버지를 공개하지 않은 두 아이를 기르며 ‘당당하게’ 지내고 있는 그녀는 1991년 ‘천재 소년 테이트’로 감독으로도 데뷔했고 지금은 연출, 제작까지 겸하고 있다. ‘패닉 룸’은 8월 국내에서 개봉된다.
도쿄〓김형찬기자 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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