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SF 마니아들에겐 ‘필수 관람’일만큼 화제작으로 국내 개봉 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작품이다. 수입사측은 “워낙 유명한 영화여서 시기를 가늠하다가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개봉하게 됐다”고 밝혔으나 마니아들의 열기가 얼마나 극장으로 이어지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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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는 ‘유전인자’로 따지면 강력한 우성인자를 갖고 있다. 이 유전자는 ‘제5원소’ ‘매트릭스’ ‘코드명 J’ 등 여러 작품에 이어지고 있다. ‘공각기동대’를 보다 보면 “저 장면은 낯익은데”라는 말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공각기동대’가 ‘매트릭스’ 등 실사 영화들을 탄생시킨 ‘원형질’이다.
서기 2029년. 인공지능과 사이보그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자신의 몸을 사이보그 몸체로 바꾼다. 비용만 지불할 수 있으면 자기 뇌를 거대 네트워크에 연결시켜 갖가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 SF 영화와 달리 관객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잠시 한눈을 팔면 ‘영화의 미로’에 빠져버리기 쉬워 적지 않은 집중력이 요구된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기본적 개념은 ‘고스트’(Ghost·인간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 ‘인형사’(人形師·Puppet Master·고스트를 해킹해 인간의 인격을 조작하거나 빼앗는 존재) 등.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은 테러 방지와 요인 암살을 주로 담당하는 공안 9과에 소속된 사이버그 기동대의 행동대장이다. 그는 뇌의 일부와 척수를 제외한 인체의 대부분이 사이보그로, 뛰어난 육체적 능력에 몸을 안보이게 하는 은신술도 사용한다. 그의 동료인 버트와 토쿠사도 육체는 일부만 가졌을 뿐 나머지는 기계다.
사이보그 기동대는 고스트를 해킹하는 혐의자를 추적한 끝에 그가 실체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인 인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사이보그의 뇌로 들어가 “자신은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체”라며 망명을 요구한다.
‘공각기동대’가 단지 미래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스케치했다면 ‘마니아’를 거느리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공각 기동대’는 컴퓨터의 확장으로 인해 인간의 존재가 위태로운 미래상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의 미래상은 음울하고 어둡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육체는 더 강해진 반면, 인간적 고뇌와 방황은 더 지독해졌다. 과연 뇌의 10%만 인간의 것으로 남아 있는 인간이 인간일까? 기동대원들은 인간으로 ‘대우’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존재론적 고민을 제기한다.
주인공 쿠사나기는 “지금 난, 전뇌(電腦)와 사이보그 몸체로 구성돼 있어. ‘나’란건 존재하지도 않을지 모르지”라고 말한다. 인형사의 그 ‘잘난’ 인간들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는 피라미드처럼 높이 쌓아올린 인간의 문명이 신기루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신들의 유전자도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불과해. 인간은 기억에 의해 개인이 되는 거야. 컴퓨터가 기억을 조작하게 됐을 때 인간은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쿠사나기가 인형사와 결합해 새 출발을 다짐하는 것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그 암울한 미래 사회에 남긴 한가닥 희망이리라.
1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제5원소' '매트릭스' '코드명 J' '공각기동대'의 상상력 빌려
“‘제5원소’의 상상력은 ‘공각기동대’에서 비롯됐다.”
‘제5원소’를 연출한 뤽 베송 감독의 말이다.
‘제5원소’ ‘매트릭스’ ‘코드명 J’ 등은 모두 ‘공각기동대’에 ‘상상력의 빚’을 졌다.
‘제5원소’에서 밝은 오렌지빛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 르 엘뤼(밀라 요보비치)의 공중 낙하 장면의 일례. ‘공각…’의 쿠사나기가 아름다운 나신(裸身)으로 공중에서 떨어진 반면 요보비치는 ‘붕대 패션’으로 몸의 일부를 가렸을 뿐이다.
‘매트릭스’도 예외가 아니다. 뒷 머리의 특정 장치를 통해 가상의 네트워크와 연결하거나 디지털 숫자 화면, 화려한 액션 등은 ‘공각…’의 주요 장면이 활용된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코드명 J’의 두뇌 해킹도 ‘공각기동대’의 ‘고스트 해킹’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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