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꽃미남'TV스타 "스크린서 뜬다면…" 너도나도 코믹연기

  • 입력 2002년 4월 18일 18시 25분


‘꽃미남’배우도 망가져야 뜬다?

TV를 주름잡던 이들에게도 영화의 ‘문턱’은 높다. 카메라 앞에서 눈에 힘만 줘도 ‘오빠’ 소리를 듣던 TV와 달리 와이드 스크린의 영화는 관객을 흡인할 수 있는 확실한 ‘상품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평소 가까운 이병헌과 송승헌의 대화.

#꽃미남의 생존전략

“너, (영화) 데뷔작 ‘카라’에서 깨졌으니까 성공하려면 다시 조연부터 해.”(이병헌)

“…. 형, 그렇지.”(송승헌)

KBS 드라마 ‘가을동화’ 등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리면서도 영화 ‘카라’에서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송승헌의 ‘대책회의’다. 결국 송승헌의 두 번째 영화는 이병헌의 조언과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감언이설’로 ‘일단 뛰어’가 됐다.

5월10일 개봉되는 ‘일단…’은 갑자기 21억원이 생긴 고교생 3명과 돈 주인인 사채업자, 형사 등이 쫓고 쫓기는 과정을 그린 코미디. 송승헌은 이 작품에서 동작이 굼뜨고 모자라는 ‘늙은’ 고3 편입생으로 ‘망가진다’. ‘화산고’의 ‘핸섬 가이’ 권상우도 같은 작품에서 호스트바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고교생으로 출연해 스타일을 구긴다.

TV에서 ‘왕자’로 대접받던 송승헌이 확실한 주인공은 아니고 조연이라고 하기에는 배역이 큰, 이른바 ‘주조연급’ 캐스팅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꽃미남의 대명사로 불린 원빈은 영화 ‘킬러들의 수다’에서 멍청한 킬러역을 자청했고, ‘화산고’의 장혁도 ‘정글 쥬스’에서 나무랄데 없는 ‘양아치’가 됐다.

박광현도 2대에 걸쳐 앙숙 관계인 도둑의 아들과 형사의 딸에 얽힌 에피소드를 그린 코미디 ‘뚫어야 산다’(6월 개봉)를 선택했다.

정준호(두사부일체) 손창민(정글 쥬스) 차인표(아이언 팜) 등 ‘30대 꽃미남’들도 이미 온몸을 내던지면서 이미지가 망가지는 배역에 승부를 걸었다.

#낮춰, 눈높이를

“캐릭터가 마음에 듭니다. 주인공 말고 조연을 주세요.”

꽃미남들의 ‘영화 접속법’은 최근 확실히 달라졌다. 주인공 아니면 ‘절대 전화 사절’에서 조연을 오히려 환영한다.

‘엽기적인 그녀’ ‘달마야 놀자’ 등에서 캐스팅 디렉터를 맡은 ‘싸이더스’의 정훈탁 이사는 “과거에는 TV에서 ‘떴다’ 하면 무조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했지만 요즘에는 개성있는 조역을 원하는 꽃미남들이 많다”고 말했다.

조인성 고수 이정진 등 영화계를 두드리고 있는 꽃미남들도 배역의 비중을 낮추거나 코믹한 이미지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정글 쥬스’의 장혁은 “매번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멋있게 무게잡는 ‘4번 타자’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정글 쥬스’는 기존 이미지를 확 바꿀 수 있는 배역이어서 부담없이 골랐다”고 밝혔다.

#꽃미남은 축복이자 비극?

꽃미남들의 적극적 변신 원인을 한국 영화의 주요 고객으로 부상한 20대 여성의 달라진 감성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20대 여성이 선호하는 남성상은 단순하게 잘생긴 게 아니라 ‘엽기적인 그녀’의 차태현처럼 여성의 이데올로기를 존중하는, 친구같은 남성이다. 한술 더 떠 요즘에는 좀 망가지고 모자라 채워줄 수 있는 남성을 고르는 수준까지 내려갔다.

꽃미남들의 축복이자 비극은 연기력보다는 잘 생긴 얼굴로 우선 기억된다는 것이다. 꽃미남의 입장에서는 ‘꽃’을 들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멍든 얼굴’로 짠 나타나 웃음을 주는 게 훨씬 안전한 선택인 셈이다.”(영화평론가 심영섭)

꽃미남들이 잇따라 영화 속에서 ‘망가지거나 작아지는 것’은 가볍고 부담없는 코미디에 팬들이 몰리는 시장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꽃미남들이 캐스팅 표적이 될 수 있는 멜로 영화의 제작은 극히 위축돼 있다. 게다가 멜로는 여러 명의 배우가 ‘떼거리 주연’을 맡는 코미디와 달리 1∼2명의 남녀 배우가 작품의 흥행 자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꽃미남에게 맡기기는 어렵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유오성 장동건 등 카리스마를 유지하고 있는 배우들은 외모와 연기력에서 모두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했다”며 “‘꽃미남’ 계열에 속하는 배우들의 망가짐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정체성을 변신으로 메우려고 몸부림”이라고 말했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