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영화]졸라… C8… 욕 '온라인 밖으로' 세상나들이

  • 입력 2002년 4월 21일 17시 48분


《영화나 인터넷 등 대중매체에서 욕설이 빈번해지고 있다. 조폭 영화에선 일상어가 돼버렸지만 ‘졸라’ ‘존나’처럼 욕설이 변형돼 마치 욕설이 아닌 것처럼 버젓이 통용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인터넷상의 풍자를 방영하면서 욕설을 그대로 내보낼 정도다. “욕설을 빼면 방송 내용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제작진의 설명. 물론 그에 대한 반론도 거세지만 욕설은 이제 대중매체 등을 통해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 》

▼레츠뮤직과 시사매거진 2580▼

미국 F-15 전투기 구입 논란을 두고 김대중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에게 “이 개♡♡!”라고 욕하는 것처럼 성대모사한 인터넷 라디오 레츠뮤직(www.letsmusic.com) ‘엽기 DJ(김대중대통령)’. 진행자 배철수(본명 이형민)가 패러디한 이 ‘엽기 DJ’에는 최근 1000만명 이상이 접속했다고 레츠 뮤직은 추산한다. 레츠뮤직은 “속시원한 욕이 예상보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며 “며칠 화제가 되고 말 줄 알았는데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어 아예 첫 화면에 띄워놓았다”고 말했다.

이 ‘엽기 DJ’는 지상파인 MBC의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오픈 그라운드’로 올라왔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일 밤9·45)은 최근 ‘인터넷의 직격탄 풍자’를 다루면서 이례적으로 ‘엽기DJ’에서 욕설을 거르지 않고 내보냈다. 자막에는 개XX로 나왔지만 소리에선 욕설이 그대로 나온 것. 정관웅책임PD는 “욕을 빼고 ‘엽기DJ’를 내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엽기DJ’가 뜨자 청와대측은 최근 법적 명예훼손 여부를 검토했다가 백지화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견이라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김동성 선수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잃어버린 사건 등에서 촉발된 미국에 대한 감정이 욕설을 통해 해소됐다는 측면도 있었다”고 전했다.

▼욕의 일상화▼

욕이 일상화되면서 위협이나 적대감 표시라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있다. 김모씨(25·가명)는 “오히려 욕을 하는 남자 친구의 솔직하고 화끈한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김모씨(34·S사 대리)부부는 “여보 오늘 ‘졸라’ 덥지?” 등의 욕섞인 대화를 자주 나누고 L사 박모 부장(42)은 부하 직원을 부를 때 의례 “이 ♡♡놈아”라고 부른다. 오히려 이들 사이에선 욕이 빠지면 ‘기분 안 좋다’는 신호다.

특히 대중화된 인터넷 공간은 익명성으로 인해 맘놓고 욕설을 할 수 있도록 부추킨다. 채팅 기능을 제공하는 업체들은 욕설이 채팅 창에 입력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장치해두고 있긴 하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8’ ‘개쉭까’ ‘벵쉰’ 등의 변종을 만들어내는데는 속수 무책일 수 밖에 없다.

▼왜 욕인가?▼

만화평론가 김지룡씨는 “성실하게 살아도 보상이 크지 않은 사회에서 생기는 ‘양아치’에 대한 동경 때문에 욕을 많이 하고 듣고 싶어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법을 무시하고 나쁜 짓은 할 수 없으나 ‘양아치’ 말투를 흉내내면서 ‘틀을 깨는’ 대리 만족과 카타르시스를 얻는다는 것이다.

인제대 국문학과 김열규교수도 저서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사계절)에서 말한다.

“…개발싸개만큼도 제 얌치머리 싸바르지 못한 축들, 남들 보면 먼저 우려먹을 생각만 하는 늑대들, 온 세상을 제 이익 챙기는 암시장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망둥이들…. 이런 따위가 기승하는 세상보고도 욕하지 않으면 화증에 걸려 타 죽기 십상이다.”

그러나 서울대 국어교육과 박갑수 교수는 “욕설의 어원도 뜻도 모르고 양념처럼 쓰는 사이에 정신이 피폐해질 수 있다”며 “욕설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져 가릴 게 아니라 전반적인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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