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휴먼다큐 “어, 내 이야기 같잖아!”

  • 입력 2002년 5월 1일 17시 57분


세 쌍둥이를 돌보는 엄마, 몸이 불편한 자식을 키우는 부모,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욕쟁이 아줌마….

이웃의 평범하고 고단한 삶을 통해 인간애를 담는 ‘휴먼 다큐멘터리’가 가족시간대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경기가 좋을 때는 내려가고, 경기가 나빠지면 올라가는 게 일반적 추세이나 최근에는 주가가 900을 오르내리는 호경기임에도 휴먼 다큐의 시청률이 상승세여서 주목을 끈다.

방송사들이 오후 7∼8시 방영하는 휴먼 다큐는 KBS1의 ‘인간극장’(월∼금 오후 7시) ‘이것이 인생이다’(화 오후 7·25), MBC ‘우리시대’(목 오후 7시), SBS ‘별난 행운 인생대역전’(수 오후 7·10) ‘트루스토리’(화 오후 7·05) 등 모두 5개. 90년대 중반 이후 자취를 감췄던 휴먼 다큐를 2000년 5월 KBS2에서 ‘인간극장’으로 부활시켰을 때 시청률이 5%대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대부분의 휴먼다큐가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인간극장’은 프로그램의 공익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11월부터 KBS1로 옮겨 방송중이다.

휴먼다큐의 원조는 80년대 중반 시작한 MBC ‘인간시대’. 해외 입양아의 아픔을 담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편 등으로 화제를 일으켰으나 90년대 초반 막을 내렸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무르익자 방송가에서 양산된 자극적 프로그램들로 인해 ‘휴먼 다큐’의 설자리가 좁아졌다는 게 방송가의 분석. MBC는 이후 ‘신 인간시대’를 내놓았으나 실패했고 90년대 후반까지 휴먼다큐는 TV에서 자취를 감췄다.

2000년 여름 주가가 폭락한 뒤 서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신음했다. 이 무렵 KBS2의 ‘인간극장’의 탄생을 시작으로 잇따라 신설된 휴먼 다큐들이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왔다.

특히 최근 경기가 살아났으나 휴먼다큐들의 인기는 여전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신현암 수석 연구원은 이에대해 “전반적으로 부의 규모는 커졌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된데다 사회적 생존 경쟁이 심해져 일상의 피로가 심해지면서 보통 사람의 일상에 눈을 돌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제작진은 방송 제작 기술의 발전과 연예 오락 프로에 대한 식상함에 대한 반사작용을 인기의 비결로 꼽는다.

KBS1 ‘인간극장’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독립프로덕션 ‘제3비전’의 이기훈 PD는 “이전에 덩치 큰 ENG 카메라 앞에선 출연자가 부자연스러웠으나 최근에는 눈에 잘 안 띄는 소형 6㎜ 디지털 캠코더로 찍으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SBS ‘트루스토리’의 남상문 PD는 “연예인의 농담 한 마디까지 대본으로 제작하는 오락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들은 식상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휴먼 다큐’의 인기에 대한 우려도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교수는 “과거 휴먼다큐는 ‘남의 이야기’였던 반면 요즘은 곧 ‘나의 이야기’로 여겨지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중산층 붕괴 등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휴먼 다큐의 인기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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