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면 PD라는 직업 때문에 늘 이 질문을 받는다.
“아∼, 역사스페셜? 그거 좋은 프로그램이지.”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는 유인촌씨가 진행을 잘 한다는 얘기로 시작돼 화제는 역사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 중에는 한국 역사를 줄줄 꿰고 있는 자칭 ‘재야 사학자’도 한 명쯤은 있게 마련이어서 침튀겨가며 만주벌판 달리면 금세 좌중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오가는 아득한 역사의 꿈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역사스페셜’이 시청자들을 역사의 꿈속으로 안내하는 이야기꾼 역할을 해온지 5년째다. 그동안 160회 가까운 방송을 했으니 아직도 더 할 이야기가 남았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걱정마시라. 아직도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다만 제작진은 꼭꼭 숨겨진 역사 이야기를 끄집어내 시청자들에게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오늘도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며 고민해아 한다.
제작진의 사무실은 너무나 조용하다. 촬영이나 편집 등으로 자리를 비운 PD를 빼면 대부분은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엄청난 분량의 책과 논문을 읽고 또 읽는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는 말. “여긴 완전히 도서관이구먼!”
제작진을 가장 당황시키는 것은 촬영할 대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같은 사서 속의 단 몇 줄의 문장, 혹은 단 몇 글자가 소재의 전부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가봐도 역사적 이야기를 풀기엔 너무 현대적으로 바뀐 모습을 만나기 일쑤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3D 그래픽. 이제는 시청자들에게도 상당히 익숙해졌겠지만 ‘역사스페셜’에서 처음 사이버 스튜디오를 선보일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역사스페셜’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사이버 스튜디오에 얽힌 에피소드 한가지. 한창 스튜디오 녹화가 진행 중인데 어느 잡지사에서 사진촬영을 하러 왔다. 파란 스크린 앞에서 녹화하고 있는 MC를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던 사진기자는 녹화가 끝날 때쯤 돼서야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세트는 언제 나타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사이버 스튜디오에는 세트가 없다. 진행자는 파란 벽면 앞에서 혼자서 움직이고, 세트와 소품은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첨가되는 것인데, 이를 몰랐던 그 기자는 이제나 저제나 세트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김덕재 KBS1 역사스페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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