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먹는 요리]지지고 볶고 살아도… 함께할 ‘夫婦 행복’

  • 입력 2002년 5월 10일 17시 27분


◈ ‘스토리 오브 어스’의 ‘팟타이’

첫눈에 사랑에 빠진 남녀는 서로를 죽도록 사랑한다고 느끼자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함께 잠들고 함께 눈뜰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곧 ‘참혹한’ 현실이 시작된다. 눈빛으로 기분까지 읽을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익숙해 가는 동안,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상대의 성격이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결혼한 지 10년쯤 된 부부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만한 영화 ‘스토리 오브 어스’는 브루스 윌리스와 미셸 파이퍼의 인상적인 연기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연출한 로브 라이너 감독의 재치 있는 연출력, 에릭 클랩튼의 쓸쓸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악이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결혼 15년차인 벤과 케이티는 수없는 신경전과 언쟁 끝에 이혼 직전의 위기에 놓인다. 맨 처음 함께 수프를 나눠 먹던 스푼을 결혼선물로 받고 즐거워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 특별했던 스푼이 ‘그냥 스푼’이 되어버리고, 틈만 나면 의미심장한 미소와 눈빛을 교환했던 그들은 서로에게 “화장실 휴지 하나 갈지 못하는 남자”나 “지긋지긋하게 잔소리 많은 여자”로 변한 지 오래다. 마침내 두 사람은 아이들이 여름캠프에 간 사이 이혼을 전제로 별거에 들어간다.

그때 케이티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평소 아시아 음식에 관심이 많던 케이티는 서점에 갔다가 태국 음식에 관한 책을 보러 나온 학부모 마티를 만난다. 그리고 관심이 비슷한 두 사람은 마티가 등록한 태국 요리 강좌에도 함께 참여해 태국 볶음국수인 ‘팟타이’를 만들며 즐거워한다.

사실 태국 음식은 전 세계 미식가들로부터 세계 4대 음식 중 하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대부분 음식에 들어가는 향신료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있다. ‘팟타이’는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태국 사람들보다 외국인들에게 더 인기 높은 메뉴다.

취미도 식성도 비슷한 남녀가 만났으니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케이티의 선택은 달랐다. 이혼 도장을 찍기 직전에야 그녀는 남편에게 외친다. “당신과 함께여야만 해요. 내 모든 것이 당신과 함께할 때만 의미가 있어요. 당신은 내가 숨쉬고 있다는 증거고, 내 사랑의 역사예요.” 케이티는 다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식탁을 차린다. 결혼이란 고달픈 현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기쁨이기도 하지 않을까.

백승국 〈 '극장에서 퐁듀 먹기' 저자·기호학 박사〉baikseungkoo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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