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등급 수직상승▼
임 감독이 수상 소감에서 밝혔듯이 이번 수상은 한 편의 영화, 한 감독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러저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칸영화제가 세계 영화 무대에서 한 나라의 영화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럽의 변방인 구 유고슬라비아의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이 ‘아빠는 출장 중’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후, 유고 영화의 위상과 상품 가치는 급작스레 상한가를 기록했다. 중국의 천카이거 감독이 ‘패왕별희’로, 터키 출신 일마즈 귀니 감독이 ‘욜’로,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체리향기’로 각각 그랑프리를 받은 것도 같은 효과를 낳았다.
칸에서 수상하면 수출가가 급등하기도 하지만,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보다 칸영화제의 독자적 가치는 할리우드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구축되는 세계 영화문화의 구도 속에서 한 나라의 영화를 상급에 진입시킨다는 데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간 한국 영화계는 칸 본선 진출과 수상이 한국 영화의 꿈이라는 점을 공유해 왔다. 그런 꿈을 실현할 기대주로 한국인의 삶과 표정, 한국의 풍광이 가장 잘 살아나는 영화를 만드는 임 감독이 꼽혀 왔다. 그래서 그도 수상 소감에서 “이젠 부담을 덜었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 문맥에서 이번 임 감독의 수상은 한국 영화 전반에 대한 인식의 상승을 의미한다. 그리고 장승업처럼 자신과 싸우며 과거 충무로 도제 시스템에서부터 지금의 한국 영화의 새로운 부흥기에 이르기까지 자기 혁신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임 감독의 반세기에 걸친 끈질긴 영화적 성취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물론 임 감독을 둘러싼 ‘이태원 제작-정일성 촬영’이라는 황금 콤비의 공도 크다.
또한 올해 칸영화제에서 스크린쿼터 운동이 할리우드를 견제하는 문화적 다양성 수호 국제연대운동으로 본격적으로 인정받으며 아시아 변방에서 유럽 중심으로 진입한 성취도 아울러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칸영화제에서 수상함으로써 한국 영화는 꿈을 이뤘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 영화의 칸, 베니스, 베를린 등 헤비급 국제영화제 수상을 지켜보면서 ‘우린 왜 안 되나’ 하며 은근히 가져왔던 콤플렉스도 벗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칸영화제가 자신의 자식들을 챙기는 것은 유명하다. 한 번의 수상으로 졸업하는 것이 아니다. 임 감독은 다시 칸에서 인정받을 만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또 그가 튼 물꼬를 이어갈 영화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그러나 칸에 나갈 영화는 한국 시장에서 박스 오피스를 기록하는 장르영화나 젊은 관객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한 트렌드영화, 또는 유사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는 영화제용 영화만 만들자는 말도 아니다.
우리는 칸영화제 수상과 상관없이 이미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에서 문제로 지적된 다양성의 문제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그런 기틀 위에서만 문화로서의 영화, 작품으로서의 영화, 그래서 국제무대에서 독자성과 질적 성취를 인정받는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이야기를 우리 시각에서 자신감을 갖고 담아내는 한국 브랜드의 영화를 만드는 시스템과 인력, 특히 감독이 지속적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영화기획 절실▼
한국 시장에서의 대중성 상품성도 중요하고 유사 할리우드 영화로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를 가전제품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제지표로서의 영화만 생각하는 편견일 수 있다. 영화는 상품이면서 집단정서와 정체성이 담긴 정신적,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영화기획과 영화제작 시스템이 살아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는 세계가 임 감독의 작품이 거둔 성취라는 맥락에서 한국 영화를 평가하고 지켜볼 것이라는 부담과 기대를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이자.
유지나 동국대 교수·영화영상학·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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