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영화]홍찬식/줄리 앤드루스의 선택

  • 입력 2002년 6월 18일 18시 50분


미국 워너브러더스 영화사가 1964년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를 제작하면서 오드리 헵번을 캐스팅한 것은 흥행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워너브러더스는 여주인공 일라이자 역에 헵번과 줄리 앤드루스 2명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 앤드루스는 가창력이 뛰어났지만 스타로서의 매력은 헵번에 미치지 못했고, 헵번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뮤지컬 영화에 기용하기엔 노래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 결국 헵번이 낙점됐고 앤드루스는 분루를 삼켜야 했다.

▷60년대 미국 영화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로 제작하는 붐이 일었다. ‘마이 페어 레이디’도 그 중 하나였다. 56년부터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당당하게 여주인공을 맡았던 앤드루스는 막상 이 뮤지컬을 영화화할 때는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그에게는 곧 행운이 찾아온다.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 출연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앤드루스의 ‘메리 포핀스’는 아카데미상에서 헵번의 ‘마이 페어 레이디’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결과는 ‘메리 포핀스’의 통쾌한 승리였다. 앤드루스는 첫 출연한 영화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한다.

▷‘메리 포핀스’의 성공에 힘입어 그는 이듬해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에 발탁된다. 전세계 10억명이 관람한 이 영화에서 그는 마리아 역에 ‘이보다 더 적합할 수 없는 배우’로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그에게 좌절을 안긴 오드리 헵번이 70년대 이후 스크린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던 데 비해 그는 연기 활동을 계속해 왔다. 지난해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선 여왕역을 맡아 오랜만에 국내 팬들에게 선을 보이기도 했다.

▷올해 67세인 그는 ‘영원한 소녀’로 불릴 만큼 여전히 청순한 용모를 간직하고 있다. 그가 95년 뮤지컬 ‘빅터 빅토리아’에서 60세의 나이로 주인공을 맡았을 때 팬들의 열광은 대단했다. 그에게도 불행은 찾아왔다. ‘빅터 빅토리아’에서 무리한 탓에 성대에 혹이 생겼고 97년 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노래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백방으로 힘써온 그가 곧 목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이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 감동적이다. 수술에는 최신 의술이 총동원된다고 하니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처럼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다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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